말레이시아는 국토의 75%가 밀림과 습지다. 수도 콸라룸푸르는 뾰족한 첨탑의 트윈타워로 상징되는 첨단 도시지만 아직도 20여 개 원시(原始) 종족이 자연 그대로의 삶을 누리고 있다. 유네스코 아태(亞太) 국제이해교육원, 문화체육관광부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과 함께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를 들여다봤다.
보르네오 섬 북서쪽에 위치한 사라왁주(州). 콸라룸푸르에서 두 시간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시부 공항에서 다시 승용차로 6시간을 달려 소도시 '미리'에 도착했다. 람비르 마을에는 가로로 길게 이어진 형태의 공동주택이 즐비했다. 롱하우스(long house)다. 롱하우스는 사라왁주의 20여 원시 종족 중 가장 비중 큰 이반(Iban)족의 '아파트'인 셈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공용(共用) 마루에서 여성들이 아침회의를 하고 있었다. 롱하우스 대표 링기 벨라자(55)씨는 "16가구가 모여 생활하는데 남자들이 아침에 일을 나가면 여자들이 모여 공동생활 규칙 등을 논의하는 회의를 한다"고 했다. 남자들의 직장은 오일 공장 아니면 농업이고, 여성들은 직물을 짜 생계를 돕는다.
방은 16개로, 한 방에 한 가구씩 살고 있었다. 지상 3m 높이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일자 모양으로 집을 지었다. 강렬한 햇볕 때문에 밖에서는 고개를 드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집 안은 시원했다.
여성들은 대부분 전통 의상 '사롱' 차림이다. 너비 1m, 길이 2m의 천을 통째로 걸쳐 입고 남은 부분은 턱을 잡아 허리에 끼우거나 끈으로 매는 식이다.
벨라자씨는 "롱하우스는 이반족이 열대 원시림에서 생활하기 편리한 전통 주거 문화"라며 "파충류를 비롯한 동물의 접근을 막고 비가 많이 올 경우 빗방울이 튀거나 집이 잠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땅에서 3m 가량 높게 집을 짓는다"고 했다.
이반족은 비다유(Bidayuh), 멜라나우(Melanau), 오랑 울루(Orang Ulu), 페난(Penan) 등 사라왁주의 원시 종족 중 가장 인구 수가 많다. 사라왁 인구 200만 명 중 30%나 된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인간사냥'을 했다고 한다. 남자들이 성인식 의례로, 여성에게 구애(求愛)하는 수단이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다.
람비르 마을 인근의 '콸라 바캄' 마을에는 사라왁 인구의 6%를 차지하는 멜라나우족(族)이 모여 산다. 전통 수상(水上) 가옥이 대부분으로, 마을 사람들은 주로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잇는다. '레복'이라 불리는 부엌은 멜라나우족의 전통을 보여주는 흔적으로, 사고(sago) 과자 같은 음식을 굽는다.
73세 할머니 수마 리디는 "대부분 현대화돼 멜라나우만의 전통이 남아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했다. 집안 곳곳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 사진이 붙어 있었다. 축구광인 어린 손자는 "밤마다 한국 드라마를 본다"며 배용준, 장나라의 이름을 읊어댔다.
때마침 사라왁주 '무카'에서 멜라나우족의 축제가 열렸다. '카울(Kaul)'이라 불리는 이 축제는 한 해 동안 사고 없이 풍어(豊漁)를 바다에 기원하는 종교의식이다. 큰 장이 열려 어른들이 전통 음식을 만들고 소품을 판매하는 동안 아이들은 바닷가에 모여 '티보'라는 전통놀이를 한다. 우리 그네를 연상케 하는 놀이다.
사바주 북쪽 끝 도시 '쿠다트'에선 룽구스족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양봉업으로 생계를 이으며 인근 농장에서 코코넛을 따다 팔기도 한다. 음식은 직접 재배한 채소나 주변에서 채취한 식물을 이용해 만든다.
현재 말레이시아 인구는 약 2560만 명. 원주민들은 대부분 동(東)말레이시아에 분포해 있고, 인구의 80% 이상은 말레이 반도에 살고 있다. 말레이계(62%), 중국계(27%), 인도계(8%)가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주류인 말레이계의 문화는 이슬람교 색채가 강해, 계율이 엄격한 편이다. 거리 곳곳에 이슬람 예배당이 있고 신자들은 매일 다섯 차례 기도를 올린다.
중국계들은 주로 고향 사람들끼리 모여 살고, 인도계도 인도 남부에서 들어온 '타밀'계나 '테르스'계가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역사를 한눈에 보려면 고도(古都) 말라카에 가면 된다. 15~16세기를 풍미했던 해상 실크로드의 동방 거점이자, 19세기 서방 세력들이 들어오던 시점까지 말레이 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 도시로 자리해왔다. 옛것과 새것,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는 곳이다. 15세기 중국 남부에서 이주한 중국인 남자들이 말레이 여성과 혼인하여 낳은 자손(페라나칸)에 의해 양쪽의 관습, 언어 등이 융합해 '바바 뇨냐'라는 독자적 문화가 탄생했다.
바바 뇨냐들이 모여 사는 '부킷 람바이' 마을에서 만난 고김복씨는 "여기까지 와 뇨냐 요리를 안 먹으면 후회한다"고 했다. 뇨냐 요리는 향신료, 코코넛으로 간을 맞춘 말레이풍(風) 중화요리다. 중국의 문화를 계승하면서도 말레이의 요소가 배어있는 대표 요리로 꼽힌다.
1946 영국, 재점령 후 말라야 연합 군정 실시
1948 영국과 말레이 연방 협정
1957 영국-말레이 연방, 독립협정 조인
1963 싱가포르·사바·사라왁 합해 말레이시아 연방 발족
1965 싱가포르 분리 독립
1967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가입
유네스코 아태국제이해교육원 제공·사진가 김찬복
말레이시아의 원시 종족들은 고유의 전통 가옥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멜라나우족의 수상가옥, 전통 부엌에서 사고 과자를 굽고 있는 멜라나우족 할머니, 양봉업으로 생계를 잇는 룽구스족. 아래 사진은 이반족이 사는 롱하우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