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여성 앵커 바버라 월터스(Walters·79)가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 30년 전 흑인 상원의원과의 '은밀한 관계'를 털어놓았다. 월터스는 미국 내에서 직접투표로 당선된 첫 흑인 상원의원 에드워드 브루크(Brooke)와 1970년대 수년간 연인 사이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5월 2일 보도)
월터스가 자서전 '오디션(Audition)'에서 거론한 브루크 전 상원의원(88)은 1970년대의 '오바마'였다. 1966년 브루크는 흑인이 어떻게 하면 백인이 대다수인 주류 정치에서 성공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모델이었다.
그는 당시 백인 인구 98%, 유권자 3분의 2가 민주당 성향, 가톨릭이 많았던 매사추세츠주에서 '공화당, 흑인, 개신교도'로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미국에서 두 번째 흑인 상원의원이 탄생한 것이 27년 후인 1993년이었으니 그의 상원 진출은 20세기 미국 정치사의 대사건이라 불릴 만했다.
워싱턴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브루크는 평탄하게 성장했다. 다른 흑인 정치인들이 인종차별을 앞세웠던 것과 달리 브루크는 "나는 인종차별의 희생자는 아니었다"고 했다. 그의 첫 부인도 2차 대전 참전 중 이탈리아에서 만난 백인 여성이었다.
흑인 학생이 중심인 하워드대에서 의과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던 브루크는 진로를 바꿔 보스턴대 법과대학원에 진학했다. 브루크는 변호사로 일하는 한편 시민단체에서도 활동하면서 '변화라는 도전'이란 책을 내 정치개혁을 주장했다. 그는 1962년 매사추세츠주 검찰총장에 당선된 후 범죄와의 전쟁을 벌이며 인기가 급상승했고, 그 기세를 몰아 워싱턴에 진출했다.
월터스가 두 사람이 깊은 관계였다고 밝힌 1970년대 중반은 월터스와 브루크가 모두 성공가도를 달리던 시절이었다. 당시 월터스는 NBC의 '투데이쇼'를 진행하다가 ABC로 옮겨 최고의 대우와 인기를 누렸고, 브루크도 청렴하고 유능한 정치인으로 명성을 굳히고 있었다.
두 사람은 뉴욕의 한 식당에서 1973년 처음 만났다. 월터스는 바로 그 시기에 자신이 "브루크에게 완전히 빠져 있었다"고 했다. 월터스는 브루크가 "가장 매력 있고 섹시하고 재미있는 남자"였다고 말했다. 당시 월터스는 두 번째 남편과 별거 중이었고 브루크는 부인과 사이가 좋지 않을 때였다.
당시 월터스의 한 친구는 "두 사람 관계는 곧 세상에 드러날 것이고 그러면 네 커리어는 끝장이고 브루크도 마찬가지다. 당장 끝내야 한다"고 충고했다. 월터스는 "두 사람의 앞날을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만날 수는 없어 슬프지만 현명하게 헤어졌다"고 했다.
월터스의 고백으로 난데없이 '30년 전 워싱턴 최고의 섹시한 남자'가 되어 주목받게 된 브루크는 두 사람의 내연관계를 확인해주지는 않았다. 그는 최근 AP통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나는 개인적인 일이나 사생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평생 지켜왔다"고 했다. 브루크가 2006년에 출판한 자서전에도 월터스와의 관계는 등장하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월터스와 헤어진 직후 브루크의 정치생명도 끝났다. 1978년 '보스턴 글로브'지가 브루크가 재산을 일부 누락해 허위로 신고하는 등 문제가 있다고 보도한 것이 몰락의 단초였다.
당시 월터스는 간절하게 브루크와 결혼하고 싶어했다고 한다. 월터스의 최후통첩에 브루크는 아내에게 이혼을 제의했다. 브루크와 아내는 이혼을 둘러싸고 냉혹한 싸움을 벌였다. 재산분할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자 아내는 브루크가 재산을 허위로 신고했다는 정보를 언론사에 흘렸다. 브루크는 '단순실수'라고 해명했지만 청렴을 자랑하던 명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브루크는 3선에 실패한 후 워싱턴 정치와 인연을 끊었다. 다른 여성과 재혼한 후 변호사와 로비스트로 일하면서 '시골신사'로 조용하게 살았다. 요즘은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살고 있다. 2002년엔 유방암 진단을 받아 남성들도 유방암에 걸릴 수 있다는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한편 월터스는 그 후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존 워너 상원의원 등과도 '결혼설'을 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