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아트센터제공

지휘자 곽승(67·사진)씨는 매년 한 차례씩 베네수엘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올해도 지난 2~3월 6주에 걸쳐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10~20대 지휘자들과 마스터 클래스를 열었다. 지난 1992년부터 16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베네수엘라는 국민 소득이 한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나라지만, 어린이와 청소년 오케스트라는 180여 곳에 이르는 '음악 강국'이다.

서울시향 상임 지휘자를 지낸 곽씨는 1983년 미국 텍사스 오스틴 심포니의 상임 지휘자를 맡았다가 베네수엘라와 인연을 맺게 됐다. 그는 텍사스 인근의 댈러스 심포니를 이끌었던 동료 지휘자 에드아르도 마타(Mata)의 권유로 처음 베네수엘라에 갔다가, 연주하는 어린이들 모습을 보고 "마치 천상에 온 것 같은" 아름다움을 느꼈다.

"길거리에서 폭력과 마약에 노출될 위험에 처해 있던 아이들이 서너 살 때부터 악기를 손에 쥐고 연주하면서 순수하게 음악에 빠져들어요. 하루 종일 연습하자고 하면 진짜 하루 종일 연주하죠."

그는 "베네수엘라는 무엇보다도 즐겁게 음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행복한 곳"이라고 말했다.

2009년부터 미국 명문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차기 음악 감독을 맡기로 내정된 구스타보 두다멜(Dudamel·27)도 곽씨의 마스터 클래스에 참가했던 베네수엘라 청년이었다.

"두다멜은 5년 전쯤 제 클래스에 들어와서 배웠는데 보통 2주 정도 걸리는 과정을 1주 만에 마쳤어요. 사실 가르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탁월한 아이였어요."

베네수엘라의 오케스트라 교육은 30년 전 경제학자이며 아마추어 지휘자이자 오르가니스트인 호세 아브레우 박사의 헌신으로 시작됐다. 아브레우 박사는 저소득층 청소년을 위한 음악 프로그램인 '엘 시스테마'를 만들었다. 첫 리허설에는 딱 7명만 모여들었지만, 지금은 3~4세부터 20세 즈음까지 어린이와 청소년 25만 명이 하루 평균 4시간씩 오케스트라 연습을 하고 음악 교육을 받는다. 이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았던 베네수엘라의 에딕슨 루이즈(23)는 지금 베를린 필하모닉의 최연소 더블 베이스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곽씨는 '엘 시스테마'의 일원으로 지휘 강습과 오케스트라 훈련의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스무 살이면 우리는 고교를 졸업하고 갓 대학에 진학한 학생 수준을 연상하지만, 여기서는 언제 어느 무대든 설 수 있는 진짜 프로 연주자로 거듭난다. 돈이 많든 적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음악 교육 프로그램을 매년 꾸준하게 열어왔다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곽씨는 지난 1995년 베네수엘라의 청소년 오케스트라인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50주년 기념 연주회에서 지휘하기도 했다.

오는 6월 1일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국제 청소년 관현악 페스티벌에서는 한국·중국·일본·독일 등 4개 청소년 악단으로 구성된 연합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브람스 교향곡 4번 등을 지휘한다. 그는 "정부와 기업, 사회가 우리 아이들의 미래와 음악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지원한다는 생각을 갖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