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미 NBC방송에서 최고 시청률을 자랑하는 코미디 프로그램 '딜 오어 낫 딜(Deal or not deal)'의 녹화가 진행 중이던 스튜디오의 비디오화면에서 조지 W 부시(Bush) 대통령이 나타났다. "오늘 밤 이 프로그램에 나오게 돼서 너무 기뻐요. … 요즘엔 지지율만 높은 곳이면 어디든 좋네요." 이날 자신의 지지율이 미 대통령 역사상 최하인 28%까지 떨어진 것을 스스로 비꼰 '자학(自虐) 개그'를 한 것이다.
26일의 백악관 기자단 연례 만찬에서도 부시 대통령은 자기 처지를 소재로 농담을 했다. AP통신은 부시가 공화·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들이 아무도 참석하지 않은 것을 놓고 "존 매케인(McCain·공화 상원 의원)은 나랑 거리를 두고 싶은가 보다. 하긴 제나(Jenna)도 가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매케인은 최근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난에 대한 부적절한 대응으로 부시 행정부를 비판했고, 부시 대통령의 딸 제나는 다음달 결혼한다.
그는 또 "힐러리 클린턴(Clinton) 상원의원(민주)은 저격수들 탓에 만찬장에 못 들어왔고, 버락 오바마(Obama) 상원의원(민주)은 교회에 갔다"고 농담했다. 클린턴이 최근 유세에서 퍼스트레이디 시절 저격을 뚫고 보스니아의 공항에 내렸다고 거짓말을 했다가 구설수에 오르고, 오바마도 다니는 교회 담임목사의 과거 '빌어먹을 미국'이란 설교 탓에 곤욕을 치른 것을 빗댄 것이었다. 하지만 이 조크의 원(原)소재는 인기가 바닥인 부시 자신이었다.
민주당 내 경선에서 접전을 벌이는 오바마와 클린턴도 '망가지기'를 자처했다. 22일 미 프로레슬링 WWE의 링에선 두 후보가 거칠게 한판 붙었다. 링 위의 후보들은 물론 그럴싸한 가짜였지만 이 난투극에 관중은 소리를 지르며 열광했다. '가짜'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가짜' 아내를 응원하려고 링까지 따라나왔다. '진짜' 후보들은 이날 WWE 팬들을 위한 축하인사까지 보냈다.
1992년 대선 때만 해도 빌 클린턴 당시 후보가 지상파 방송에서 색소폰을 연주한 것이 유일한 화제였다. 그런데 왜 요즘 미 정치인들은 자기가 '무너지면서'까지 사람들을 웃기려는 것일까.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2일 "'엘리트주의(elitism)'는 정치 생명의 끝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치인들 대부분이 명문대, 명문가 출신이라는 게 오히려 사람들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우리(일반인)와는 다르다'는 인상까지 더해지면 '비(非)호감' 정치인으로 찍힐 수도 있다.
정치인의 '엘리트' 이미지를 벗기는 데는 배우자들도 적극적이다. 매케인의 아내 신디는 21일 ABC방송의 토크쇼 '더 뷰(The View)'에 나와 "나는 남편을 '조니-보이(Johnny-Boy)'라고 부른다. 남편은 요리와 원예를 좋아한다"고 밝혀 엘리트 군인 가문 출신인 매케인의 딱딱한 이미지를 희석하려고 했다. 오바마의 아내 미셸은 "남편이 양말을 아무 데나 벗어 던지고 발 냄새가 난다"고 말해 '하버드 로스쿨 출신의 완벽한 남자'라는 이미지에 일부러 흠집을 냈다. 퍼스트레이디인 로라 부시는 22일 NBC방송의 토크쇼 '투데이에서 연예인들과 함께 '25초 만에 샌드위치 만들기' 시합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