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두 개의 각기 다른 TV 토크쇼 프로그램에서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

"정말 남자들은 첫사랑을 잊지 못하나요?"

이 무슨 해괴한 물음인가. 조선시대 성춘향을 잊지 못해 마패차고 '암행어사 출두야!'를 외쳤던 이몽룡도 아니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남자는 과연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가.'라는 시대착오적인 궁금증이 아직도 존재했단 말인가? 그러나 화두를 던진 사회자는 물론, 그 대답을 기다리며 눈을 반짝이던 여성 패널의 태도를 보건데, 슬프게도 여전히 유효한 의문이었다.

남자의 한 명으로서 감히 단언하건데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는 명제는 조작된 신화다. '영원히 잊지 못하는 첫사랑 따윈 없다'이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모순된 이야기에 불만을 제기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그 변명을 시작해 보겠다. 일단은 여성들이 왜 이런 신화를 믿게 되는지에 대한 고찰이다.

상황을 하나 설정해 보자. 잠시나마 사귀던 남자가 이별을 통보해 온다. 여자의 입장에선 뜻밖의 결말이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마지막 인사를 고하는 남자는 머뭇거리며 이런저런 핑계를 입에 올린다. '우린 잘 맞지 않았던 것 같아'. 이 정도면 양호하다. 이런 변명도 있다. '예전 기억이 남아 너를 만나기가 쉽지 않아'. 작별의 말에 매달리며 두 사람의 관계가 어디서부터 문제였는가를 해석하던 여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우리가 잘 맞지 않았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와는 잘 맞았다는 의미고, 예전 기억이 남아 있다는 것은 나를 만나기전 사귀었던 누군가가 그의 머릿속에서 아직 지워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니, 결국 그는 옛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 확실해!' 남자들이 헤어짐의 근거를 만들기 위해 억지로 꾸며낸 마지막 말은 여성들에겐 잘못된 이해를 제공하고 곧 주변 동료들에게 전파되고, 이렇게 모인 얘기가 신화가 된다. '남자들은 첫사랑을 영원히 못 잊는다!'는.

그러나 여성들의 신화에 등장하는 남자들의 첫사랑은 그녀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대상들이다. 남자들의 첫사랑이라고 하면 대부분이 고등학교 시절의 선생님이나 대학시절 첫 미팅 상대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예전 기억을 첫사랑이라고 믿는 남자는 없다. 그들이 말하는 첫사랑이란 무수히 많았던 예전 사랑들 중, 가장 사랑한 여자를 지칭하는 일종의 대명사이다. 비교우위를 따져 제일 사랑했던 사람이 첫사랑이 되는 것이고 그 나머지는 그저 그런 지나간 한 때의 해프닝으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다. 이에 대한 증명은 아주 간단히 이루어진다. 주변 남자에게 물어보라. 누구는 첫사랑이고 누구는 두 번째 사랑이고, 다른 누구는 세 번째 사랑이라고 순번을 매기는 사람이 있는지. 오직 가장 열렬했던 사랑만이 첫사랑이란 명예를 획득할 뿐 다른 사랑은 존재조차 희미하다. 그러니 누군가가 당신의 첫사랑은 누구인가라고 물어 올 때, 순서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제일 사랑한 사람을 첫사랑이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돌고 돌아 결국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라고 여성들에게 잘 못 전달된다.

중요한 것은 남자들이 잊지 못하는 것이 시간상으로 진짜 첫사랑인지 아니면 첫사랑이란 대명사를 획득한 과거의 어떤 사랑인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자의 입장에서 상대 남자가 예전 사랑을 잊지 못해 떠난다는 것은 단지 현재의 그녀를 과거의 누구만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남자를 사로잡을 만큼, 남자가 과거의 누군가로부터 벗어나 그녀에게 투항할 만큼 매력적인 연애가 아니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이제 소모적인 첫사랑의 신화는 잊어버려라. 오직 당신이 바로 그의 첫사랑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만을 생각하라. 그것이 현재 진행 중인 연애의 가장 뛰어난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