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의 나이로 소녀가장이 됐다. 그후 오직 가족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했다. 병든 아버지, 어린 세 동생의 뒷바라지로.

그 때문에 올해 나이 마흔한살이지만 아직 미혼이다. 그러나 그는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김미경씨(대구시 중구 대신동).

옛날 기준으로 봐도 그런 효녀가 없다.

2남2녀의 장녀로 태어난 미경씨의 불행은 13살에 시작됐다. 철공소 하청일을 하던 아버지와 전업주부로 살림만 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화목하게 지내왔지만 무슨 일인지 어머니가 행방불명됐다. 그때부터 미경씨의 고난은 끊임없이 계속됐다.

실의에 빠진 아버지를 대신해 세 동생들을 보살피며 생활했다.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봉제공장에 취직했다. 낮에는 봉제공장에서, 저녁에는 집안청소, 세탁, 식사 등 가족을 위해 소녀가장이 할 수 있는 일들은 모두 그의 차지였다.

실의를 이기지 못하고 아버지는 1992년 건강이 나빠 쓰러지면서 거동불능 상태에 빠졌고, 봉제일 마저 그만두고 24시간 아버지를 간호하기에 이르렀다. 어려운 살림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쉽게 소화할 수 있는 부드럽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매주 네 차례씩 인근 한방병원과 노인전문병원을 찾아 재활치료를 받게 하는 등 헌신적인 간호에 전념했다.

이웃사람들은 "하늘이 내린 천사"라는 극찬마저 아끼지 않았다. 이같은 효행이 알려져 지난해 어버이날을 맞아 국민포장을 받기도 했다.

또 올해 제51회 보화상 본상 수상자로 결정돼 오는 24일 오전 11시 대구시 남구 대명3동 보화원회관에서 열리는 보화상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다.

보화상은 1956년 10월 고(故) 조용효(趙鏞孝)씨가 동양의 윤리도의가 서양의 물질문명에 밀려서 쇠퇴해 가는 것을 개탄해 고유한 윤리도의를 높이자는 뜻에서 제정한 상. 모범적인 효행·열행·선행자를 발굴해 지금까지 1500여명에 대해 시상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