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4기 독자권익보호위원회 첫 정례회의가 지난 14일 본사 회의실에서 열렸다. 회의는 김용준(전 헌법재판소 소장) 위원장의 사회로, 박기석(시공테크 회장), 김인묵(고려대 물리학과 교수), 방석호(홍익대 법학과 교수), 전용희(세종 변호사), 강미은(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전원열(김&장 변호사), 김태수(동양 변호사), 하성란(소설가), 김민정(주부) 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김용준=18대 총선이 끝났다. 조선일보의 총선보도와 관련된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방석호=언론은 이번 총선이 정책이나 이슈 등이 실종된 선거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14일자 A33면에 실린 유인태 통합민주당 의원의 조선인터뷰 기사를 보고 나니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 의원 말로는 '뉴타운 지정'을 공약(公約)으로 내걸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했다.

총선기간 동안 후보자들의 뉴타운 공약이 과연 합당한 것이었는지 유권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한 것은 아닌지 등을 짚어주었어야 했다. 언론은 정책이 실종되었다고 정치권만 탓할 게 아니라, 뉴타운 같은 공약의 실상을 파헤쳐 쟁점화시켰어야 했다.

▲박기석=후보자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소개하기보다 각 정당의 계파 움직임을 보도하는 데만 열중했다. 국민들은 후보자 개인 정보를 중요하게 여기지 계파 간 세력다툼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후보자가 늦게 확정된 측면도 있지만 후보자 정보를 소개하려는 언론의 노력도 부족했던 것 같다.

▲강미은=후보자들의 홍보물을 보면 시·군·구청이 한 일을 마치 자신이 한 것처럼 홍보하는 경우가 많다. 언론이 이런 과장된 홍보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검증했는지 의문이다.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김민정 김인묵 전용희 박기석 위원, 김 용준 위원장, 방석호 전원열 강미은 김태수 위원.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김민정=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여론조사가 난무하다 보니 선거 후 허무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신문마다 서로 다른 여론조사 결과를 매일 쏟아내는 바람에, 독자를 헷갈리게 만들고 여론조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만 심어주었다. 선거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여론조사가 여론을 고정시켜 버리는 문제점이 있다.

▲전용희=총선 당일의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와 실제 개표 결과가 큰 차이를 보이자 방송사들이 출구조사가 잘못되었다는 사과성 방송을 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방송국 출구조사의 틀린 부분에 대한 분석기사를 실었지만, 조선일보가 실시한 그동안의 여론조사가 틀린 부분에 대한 반성이나 해명 기사는 싣지 않았다.

또 각 언론마다 여론조사가 잘못된 이유로 저조한 응답률을 드는데, 그렇다면 여론조사 보도 시 저조한 응답률 때문에 결과가 왜곡될 수 있거나 정확한 여론이 반영 안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알려주어야 한다.

▲강미은=5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을 때 응답률이 낮다면 당초 여론조사 기관이 구상했던 연령별·성별·지역별 표본 대상자와 실제 조사 대상자가 크게 달라진다. 이런 경우 조사 결과가 틀리게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응답률이 낮은 여론 조사 결과는 공표하지 않는 게 좋다. 그런데도 그대로 공표되는 여론조사가 많다.

▲김인묵=권력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유권자들이 본심을 얘기하지 않아 여론조사와 출구조사의 결과가 다르게 나온 것 같다. 그러나 여론조사 기법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어 통계적 기법과 과학적 표본을 제대로만 적용하면 잘 맞을 것이다. 여론조사 무용론을 주장하기보다는 여론조사 기법을 어떻게 보완하고 개선할 것인가에 주력해야 한다.

▲하성란=투표를 강제로 하게 하면 아무나 찍을 수 있다. 투표할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투표를 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 투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부에 대한 무언의 압박이자 무관심의 또 다른 표현이다. 또 여론조사로 '판세가 뻔히 보이는데 투표해 무엇하랴' 하는 심리도 깔려 있을 것이다.

▲전원열=점점 정당의 공천이 선거결과를 좌우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공천 과정의 투명성과 민주화를 담보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17대 총선과 달리 이번 18대 총선에서는 당원과 시민들이 공천하는 상향식 공천이 실종되었다. 이런 점이 지적되지 않아 아쉽다.

▲김태수=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역대 최저다. 선거가 끝났다고 손을 놓을 게 아니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조선일보만이라도 이번 총선의 투표 데이터를 분석하고 특파원들로 하여금 다른 나라의 기권방지 방법 사례들을 검토하도록 해 낮은 투표율을 막는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투표 불참자에게 불이익을 주더라도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

▲김용준=지난 3월, 혜진·예슬양의 살해 사건을 묘사한 보도가 지나치게 상세했다는 독자들의 지적이 있었다.

▲김민정=혜진·예슬양 또래 아이를 둔 엄마로서 이번 사건은 각별하게 느껴진다. 언론은 사건이 터져 범인이 잡힐 때까지는 비교적 조용히 있다가 범인이 잡히고 사건에 대한 윤곽이 잡히면 그때부터 비참한 부분까지도 낱낱이 파헤치는 경향이 있다. 기자가 혜진이 아버지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는 모습을 보면서 기자가 가해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기자들에게도 부모의 심경을 헤아리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하성란=혜진·예슬양 기사를 상세하게 보도함으로써 타 신문과의 차별화를 시도하려는 기자나 신문사의 의욕은 이해가 되나 지나치게 상세한 살해방법 묘사는 독자들로 하여금 또 다른 공포를 느끼게 한다. 전국민을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로 몰아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김용준=최근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대안교과서의 내용 보도를 놓고 사회적 반향이 컸다.

▲전용희=기사를 꼼꼼히 읽어보면 조선일보의 '보수적 이미지' 때문에 오해를 받는 것이지 실제 보도내용은 대안교과서를 적극적으로 지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안교과서가 일제의 수탈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해 또 다른 편향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균형을 보였다.

▲김태수=이념적 지향이 다른 전교조 등의 격렬한 반응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획일성 극복에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사회 일각에는 일제시대에 일어난 모든 것을 부정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예를 들어 일제시대 토지조사사업 통계가 정확해 근대적 소유권이 이때부터 생겼다는 분명한 사실조차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김용준=최근 조선일보 지면을 읽고 느낀 점을 자유롭게 이야기해 보자.

▲박기석=기업인들이 신문을 보는 주 목적은 정보습득에 있다. 몰랐던 정보를 접하게 되면 신문을 보는 것이 즐겁다. 일반 독자와 달리 기업인들은 종합일간지를 볼 때보다 경제지를 볼 때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또 종합일간지는 워낙 정치기사가 많아 2~3개 신문을 볼 필요가 없다.

반면 경제지는 신문마다 겹치지 않은 정보나 글로벌 경제 등이 많아 2~3개를 보아도 모두 새롭다. 어떤 신문이 얼마나 더 가치 있는 정보를 많이 제공하느냐, 이것이 신문사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 가치 있고 미래지향적인 정보를 많이 실어주기 바란다.

▲방석호=총선 당일 밤 12시까지 개표방송을 보다가 다음날 신문을 보니 거의 전날 밤 방송을 통해 알고 있던 정보였다. 새삼스럽게 신문의 경쟁력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방송은 계절이 바뀌면 프로그램 개편이라며 새로운 포맷을 제시한다. 그러나 신문에서는 논조의 변화 정도에만 그칠 뿐 방송과 같은 변화를 찾을 수 없다. 자기 변신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독자를 끌고 가는, 독자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박기석=조선일보 경제면에서는 중소기업 기사가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기업인 수의 98%가 중소기업인이고, 고용효과의 88%가 중소기업에서 이뤄지고 있다. 32%의 수출과 50%의 GDP를 담당하는 것도 중소기업인데도 기사를 찾아볼 수 없다. 틈새시장을 찾는 것이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중소기업에도 좋은 기삿거리가 많다. 메이저 일간지의 매너리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전용희=조선일보는 정치적이고 이념적 색깔이 분명해 늘 논란을 불러일으키거나 이슈의 중심에 서 있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러나 그것은 보수 언론의 대표격인 조선일보가 짊어져야 할 당연한 짐이라고 생각한다. 불편부당성과 이념적 지향성 등을 어떻게 조화롭고 균형 있게 맞춰갈지 구성원 모두가 매일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전원열=사회가 건강 하려면 원활한 계층이동이 보장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10여 년 전부터 역동성이 정체되어 보인다. 우리 사회가 어떤 구조를 가져야 역동성 있고 침체하지 않을지 고민하는 조선일보가 되었으면 좋겠다. 진정한 보수는 역동성을 보장하는 방법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진정한 보수에 대한 컨센서스가 정립되어 있지 않다. 한국적 진정한 보수의 의미 정립에 조선일보가 앞장섰으면 좋겠다.

▲김인묵=과학 등 익숙지 않은 분야 기사는 꼭 관련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는 것이 좋겠다. 4월 8일자 B8면 '중력 없는 우주, 인간의 몸에는 어떤 변화가?', 4월 10일자 B9면 '한국산 우주저울 성능 테스트한다', 4월 11일자 A21면 '총알 10배 속도로 비행' 기사 등에 물리학적으로 잘못된 표현이 보인다.

세 기사에 '중력이 없는' 혹은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 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우주정거장 고도에서는 중력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뿐 중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우주정거장의 고도에서는 지표면 값의 약 93%의 중력이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우주인의 몸무게도 지상과 큰 차이가 없다. 중력이 없으면 우주비행선은 궤도비행을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