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13일 기자회견에서 4·9총선 결과를 "더이상 좌고우면하지 말고 타협과 통합의 정치를 펴면서 경제 살리기와 민생 챙기기에 매진하라는 준엄한 명령"이라고 했다.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지만, 이 대통령을 둘러싼 상황은 간단하지만은 않다.

대통령은 총선 후 "역시 국민이 정치보다 앞서가고 있다. 감사하고 있다"며 국회 299개 의석 중 과반인 153석을 확보한 데 대해 안도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내 친(親)박근혜계 의원들만 30명이 넘고 당 밖 친박(親朴)연대와 친박 무소속 당선자까지 합치면 50명이 넘는다. 이들은 야당 이상으로 이 대통령과 부딪칠 소지가 다분하다.

18석의 자유선진당도 보수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현실 정치에서 이 대통령과의 대치 전선은 오히려 더 첨예할 수 있다. 여기에 대통령 견제가 본업이나 마찬가지인 81석의 통합민주당이 있다. 이러고 보면 이 대통령이 움직일 수 있는 국회 의석은 과반에 한참 모자라는 것이 현실이다.

대통령이 경제와 민생에 집중하고 성과를 내려면 정치가 안정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대통령이 다짐한대로 각 정치세력들과 대화하고 타협하는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은 작년 한나라당 경선 승리 후, 대통령 당선 뒤, 연초 기자회견에서 빠짐없이 대화와 타협을 약속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통령이 몸담고 있는 한나라당부터 둘로 쪼개지고 말았다.

이제 친박연대와 친박무소속연대 당선자들의 한나라당 복당(復黨) 문제로 다시 양측이 충돌하고 있다. 대통령은 "한나라당에 친이(親李)는 없다. 친박은 몰라도…"라고 했지만 당장 눈앞의 '친박'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타협 정치는 공염불이 되고 말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박 전 대표와 먼저 타협해야 한다.

대통령이 마음만 연다고 타협 정치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여권에선 총선이 끝나고 나니 국회의장을 할 만한 인물도 마땅치 않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총선 공천이 얼마나 무(無)계획적이었나를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다. 총선 직전엔 대통령이 서울 은평을 지역구를 방문해 괜한 역풍을 불러오기도 했다. 청와대의 정치적 판단기능이 고장 난 사례는 이 밖에도 많다.

대통령이 가는 길 앞엔 암초가 숨돌릴 틈도 없이 출현하기 마련이다. 그 장애물들을 예견하고 피해가는 것이 청와대의 정무적 역할이다. 타협 정치의 성공 여부는 청와대의 정무능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대통령은 정치특보와 정무장관 인선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스스로도 정치를 대하는 자세를 다시 가다듬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