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헬기가 골프장에 나타난다면? ①그냥 친다 ②집중에 방해된다고 욕을 한다 ③게임을 잠시 멈춘다.
욕은 해도 된다. 하지만 ①번만은 피해야 한다. 산불헬기 조종사 양화석(59)씨는 "헬기가 골프장에 가는 건, 골프장에 있는 호수에서 물을 떠 산불을 끄기 위한 것"이라며 "얼마나 급하면 골프장에 가겠나"라고 말했다. 양씨는 "용인에 골프장이 많은 것이 산불 끄기에는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그런데 헬기가 옆에 있어도 게임을 진행하는 사람이 있어 가끔은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특히 물을 빨아올릴 때는 지면에서 1~3m로 낮게 떠 있기 때문에 골프공 하나가 헬기를 추락시킬 수도 있다.
양씨는 용인시의 산불진화를 담당하는 헬기 조종사다. 처인구 남동 산 57-1번지의 헬기기지에서 11월부터 5월까지 자신이 모는 'AS350' 헬기와 동고동락한다. "(헬기를 가리키며) 잘생겼죠? 잘 생겨서 CF나 영화에도 자주 출연했답니다." 양씨는 '작업의 정석'에도 나왔고, 드라마 '패션70s' 등에도 출연했다.
이 기간에는 집에도 못 간다. "원래 집은 서울인데, 이 기간엔 아예 용인에 원룸을 얻어서 거기서 자요. 그리곤 아침에 해가 뜨면 바로 이 산 위로 올라오죠." 주말? 당연히 없다. "휴무일은 비가 오는 날이나, 비가 많이 온 다음날 까지죠. 재수 없으면 몇 달 동안 못 쉴 때도 있고."
사실 위험한 일이다. 1972년부터 군에서 헬기조종사로 근무하다가 지난 1990년 제대한 뒤, 민간 항공사에서 일해왔다. "처음 함께 헬기조종을 배운 30여명의 항공단 동기생 중 3~4명은 순직했지요." 그래도 천직이라 여긴다. "다른 길로 가보려고 애써봤는데 안되더라고. 내 길이 이쪽으로 정해져 있었나봐요. 요즘에 이 일이 너무 즐거워요."
산불진화는 더더욱 위험하다. "산불이 나면 공기가 데워져, 난기류가 발생해요. 여기에 휘말리면 헬기는 낙엽이나 똑같아. 그냥 떨어지는 겁니다." 그에게도 위험한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갑자기 엔진이 꺼져 수백미터 상공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인간이 망각을 하니깐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거죠. 특히 이 일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일이라 생각해요. 갑자기 그 분이 보고 싶다고 부르시면 가야지 뭐. 하하."
'요즘엔 산불 소식 못 들었는데, 한가하겠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양씨는 "산불이 알려지는 건 일년에 몇 차례지만 실제로는 하루에 수차례씩 작은 산불이 난다"고 말했다. 지난달 21일에는 하루에 7건의 산불신고가 접수돼 잠시도 쉴 틈 없이 현장에 출동했다. 밥도 못 먹을 때가 많아 헬기 속에는 비상용 초코파이가 준비돼 있다.
"뱀도 머리를 노려야 잡듯이, 불을 끌 때도 불머리, 그러니까 화두(火頭)를 공격해서 잡아야 해요. 불이 수백 미터씩 날아간다고 하잖아요. 그게 화두에서 불꽃이 튀는 거에요." 불머리는 맨 앞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부분을 말한다. 헬기는 불머리에 접근 해 가장 핵심에 물을 뿌려야 한다. "제대로 탁! 때리면 흰 연기가 엄청나게 올라오면서 불이 확 가라앉아요. 그땐 정말 보람이 있죠." 용인의 산불은 대부분 사람의 실화로 생긴다. "대부분이 전원주택단지에서 쓰레기를 태우다가 산으로 옮겨 붙는 거에요. 그럴 땐 혼자 끄려 하지말고 바로 신고를 해야 합니다. 빨리 신고하는 만큼, 빨리 끌 수 있어요."
헬기장에선 매일 색소폰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한 3년 전부터 색소폰을 불기 시작했어요. 산 위에 있으니깐 혼자만의 취미가 필요해서요." 부는 노래는 모두 비(雨)에 관한 것이다. 컴퓨터엔 그가 분 '봄비·유리창엔 비·비의 나그네·안개비' 등 비에 관한 노래들이 가득 MP3파일로 저장돼 있다. 분위기를 내기 위해 직접 노래 반주기도 구입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비 좀 와달라는 마음으로 분다고 하죠. 내가 생각해도 잘 불었다 싶을 때는 녹음해서 부인한테 들려줘요." 매일 이어지는 양씨만의 색소폰 기우제(祈雨祭). 가슴을 적시는 만큼, 산에도 이슬이 촉촉히 맺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