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이천시 창전동에서 미미사진관을 운영하는 이무정(68)씨는 주머니에서 오래된 수첩을 꺼냈다. 검은 글씨로 빽빽한 수첩에는 김결실, 한송이, 이장미, 김미정 등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모두 이천 설봉중학교를 나와 여자축구 국가대표로 성장한 선수들이다.
그는 "처음에 나는 축구의 축자도 모르는 사람이었어"라고 입을 뗐다. 사실 사진관 사장과 여자축구의 관계를 눈치채긴 쉽지 않다.
이씨가 이천의 여자축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1년 설봉중 여자팀 창단 때였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사진관을 운영하면서 이 학교 육성회장직을 맡고 있던 그는 팀의 어려운 사정을 보고 코치 월급에 보태라며 40만원을 내밀었다. 그때만해도 "여자가 무슨 축구냐"며 사람들이 혀를 차던 시절이었다.
설봉중 아이들이 뛰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졸업생들이 계속 축구를 할 수 있는 고교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지인들과 함께 3~4곳의 학교를 접촉하며 여자축구팀 창단을 위해 뛰었고 1997년엔 가까운 장호원고교의 창단 허락을 얻었다. 2001년에는 친구인 이천 초등학교 교장을 졸라 초등학교 팀까지 창단하도록 '배후'에서 힘썼다. 지금 이천은 초→중→고→대학(여주대)까지 여자 선수들이 단계적으로 축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보기 드문 도시가 됐다.
그는 93년부터 한달 지원금을 70만원으로 올렸고, 지금까지 18년간 한번도 빠짐없이 총 1억4000여만원을 설봉중과 이천초등학교에 지원했다. 그의 사진관은 모두들 무관심하던 때에 여자축구의 희망을 찍는 곳이었던 셈이다. 이씨는 "축구를 통해 여성들도 자신감을 얻고 팀워크를 배울 수 있기에 지원을 시작하게 됐다"며 "여자월드컵축구 4강, 월드컵 우승은 누구나 바라는 일이지만 이를 위해선 더 많은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축구발전을 위해 조선일보가 만든 '윈저 어워즈(Windsor Awards)' 두번째 수상자로 선정된 이씨에게는 트로피와 상금 100만원이 수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