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우스다코타주 러시모어 바위산에 '큰 바위 얼굴'이 있다. 조지 워싱턴을 비롯한 네 명의 미국 대통령 얼굴이 18m 크기로 새겨져 있다. 큰 바위 얼굴은 1927년 8월 거츤 보글럼이 착공해 1941년 10월 아들 링컨 보글럼에 의해 완공됐다.

충북 음성군 생극면 관성리 9-1번지에 미국 러시모어 바위산을 능가하는 '큰 바위 얼굴 조각공원'이 있다. 2006년 5월 만들어진 공원은 넓이가 17만 평(56만1986㎡)이다. 그 안에 3m 남짓한 화강암 조각상이 3000개다.

누가 만든 것일까.

정근희 이사장이 충북 음성에 조성한 큰 바위 얼굴 조각공원에서 조각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뒤쪽으로 보이는 조각상 1개의 무게가 30톤이 넘는다. ☞동영상 chosun.com

"다들 나보고 미쳤다고 했지요. 편안하게 잘살 수 있는데 돌에 미쳐 헛돈만 쓴다고…. 맨정신으론 이런 일 못 하지요."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중절모의 노신사가 정근희(61) 음성현대정신병원 이사장이다. 그는 진짜 돌에 미쳤는지 호(號)까지 거암(巨岩)으로 지었다.

정신병원은 원래 요양원으로 출발했다. 정 이사장의 5년 터울 형인 고(故) 정선희 목사가 1974년부터 행려병자들을 모아 돌보던 곳이다. 그 형이 요양원을 만든 지 4년 만에 사망하자 서울에서 문구류를 만들던 정 이사장이 요양원 운영을 떠맡았다. 1988년 병원 허가를 받았고 1990년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환자들이 산책하는 코스에 조각 석상을 놓으면 도움이 될 것 같아 시작했죠. 그러다 미국의 큰 바위 얼굴이 생각났어요. 역사와 영웅에 대한 과시도 되고 그걸 보러 사람들이 몰려드니 지역 발전에도 도움이 됐잖아요. 한국에도 그런 게 있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정 이사장은 1991년 준비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산에다 조각하려 했지만 자연훼손이라는 반발이 나올 게 뻔했다. 그래서 정 이사장은 아예 중국인도네시아에 공장을 차렸다. 중국 푸젠(福建)성에서는 50년간 화강암을 캐낼 수 있는 권리를 따냈고, 현지에 '거암예술학원'이라는 전문 석공 양성기관까지 설립했다. 그 일을 하는 동안 여권만 7번을 바꿨다. 정 이사장은 요즘도 1년에 9개월은 해외에서 보낸다.

"얼굴 하나 새기는 데 40톤짜리 돌을 석공 6명이 7개월 동안 쫍니다. 지금 국내에서 똑같은 재질과 품질의 작품을 만들면 점당 2억원 정도는 들 겁니다. 황영조 선수 동상 같은 것은 6번을 망치고 나서 완성해서 이번 5월에 들어옵니다. 6년이 걸렸어요. 황 선수는 골인 장면이 일품이잖아요. 한발로 땅을 디딘 모습인데, 그게 그렇게 어렵습니다."

2006년 1차로 조각 1000점을 먼저 들여왔다. 3m 이상 높이에 무게도 30톤이 넘는 조각은 운반도 쉽지 않았다. 화물용 컨테이너는 23톤 정도의 무게만 감당할 수 있고, 높이도 2.2m를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화물선 60대를 수배했습니다. 배 1척에 조각상 32점이 들어가더군요. 그걸 18m짜리 트레일러 32대를 이용해서 항구에서 조각공원까지 날랐습니다. 무게 때문에 고속도로도 못 타고, 조각상 높이 때문에 터널도 통과할 수가 없어서 전국 도로망을 샅샅이 뒤졌지요."

병원 1층에 있는 정 이사장의 사무실은 벽을 둘러 책이 가득 차 있었다. 브리태니커 사전, 위인전기, 종교 관련 서적, 소설, 수필…. 대한민국 미술대전 조각 작품집, '화가와 모델' 등 미술 관련 서적들도 상당했다. 정 이사장은 "나는 매일 신문을 12개나 샅샅이 다 훑어본다"며 "모든 정보를 신문에서 얻는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세계 185개국 위인과 유명인사 조각으로 가득 찬 '큰 바위 얼굴 조각공원'이 만들어졌다. 사람뿐 아니라 쌍둥이 광개토대왕비도 있다. 하나는 중국 지안(集安)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의 탁본을 구해 3년간 제작한 광개토대왕비고, 그 옆에 초등학생용 '한글판 광개토대왕비'도 서있다.

지난해 60만 명이 다녀간 조각공원에서는 관람객들이 조각을 만지고 껴안을 수 있다. "위인들을 몸으로 느끼라"는 배려다. 사자상은 어린이들이 올라타고 기념촬영을 하느라 등판이 반질반질했다. 다비드상의 남근(男根)은 직원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세제를 뿌리고 솔로 박박 문질러준다. "하이고, 참 실하네. (남편 죽고) 20년 만이데이"라며 달려드는 할머니들의 손때가 묻어 금세 새카매지기 때문이다.

정 이사장은 "이름 있는 문중이나 재벌총수들이 연락을 해온다"고 했다. 돈을 댈 테니 얼굴 조각을 만들어 세워달라는 것. 수십억 원을 내겠다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는 "외압으로 대상 인물을 선정한 적은 없다"고 했다. 요즘은 박태환, 김연아 조각상을 만들 궁리를 하고 있다.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를 비롯해 각종 지방자치단체에서 "우리 지역으로 조각공원을 옮겨달라"는 연락도 수시로 온다. 음성군에서는 지역 경제 발전에 도움을 주는 조각공원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50만 평(약 165만2900㎡) 부지를 제공하기로 했다. 5년쯤 뒤 더 넓은 곳으로 옮겨 대형 테마파크로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