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섭 논설위원

요즘처럼 봄철 날씨가 변덕스러워지면 긴장하는 곳은 기상청만이 아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있다. 예상하지 않았던 감기 환자가 많아지면 병·의원과 약국에 내줄 돈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건보공단은 요즘 수입과 지출을 근근이 꿰맞추면서, 예상보다 한 푼이라도 더 나가면 깨질지 모를 위태로운 살얼음판 위에 서 있다. 연간 25조원을 지출하는 공단이지만 현재 잔고는 열흘치 지출액인 1조원밖에 안 된다. 법에는 6개월치 지출액을 쌓아놓도록 되어 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연말까지 현재 잔고라도 지키려면 감기환자 같은 예상 외 지출이 생기지 않도록 고사(告祀)라도 지내야 할 형편"이라고 씁쓰레해 한다.

암 환자는 총 진료비의 10%만 내도록 하고 어린이는 병원비를 면제하는 등 호시절을 과시한 게 최근까지의 일이었다. 그런 건강보험 재정이 어찌 이 지경까지 왔는지 국민들로선 속 뒤집힐 일이다.

새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지난 1월 복지부 업무보고에서 "어떻게 했기에 빚만 남겨주었느냐"며 노무현 정권을 탓했다고 한다. 작년 적자액이 2847억원으로, 하루 평균 13억원꼴의 적자가 났기 때문이다. 병원 밥값까지 보험 혜택을 줄 정도로 정부가 생색내기를 한 결과라는 것이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낙후지역 기업들의 경비부담을 줄여준다며 회사측이 낼 보험료(568억원)를 정부가 떠안았다. 이런 정부 지원은 선진국들도 전례가 없다. 곳간이 비든 말든 '포퓰리즘' 망령들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는 정작 국고로 책임져야 할 빈곤층들의 의료비용(의료급여)을 국민들의 호주머니로 떠넘겼다. 올해 2800억원, 내년에는 무려 7000억원이나 된다.

건강보험 재정이 엉망이 된 것은 2000년 건강보험 통합과 의약분업 이후다. 통합 전만 해도 직원들은 행여 재정파탄이 날까봐 자신이 일하는 지역의 병원을 일일이 쫓아가 과잉진료를 감시하고, 병원을 자주 찾는 환자들에겐 가지 말라고 말렸다. 그러나 '공단'이라는 전국 통합 조직이 된 뒤에는 책임의식이 사라져 누구도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 의약분업도 마찬가지다. 병원은 진료비를 올려주었는데도 리베이트가 여전하고, 약국들은 약값보다 더 비싼 조제료를 챙기기도 한다. '돈먹는 하마' 구조로 의약분업을 만들어 놓고도 정부는 태평하게 국민들에게만 "돈 더 내라"면서 손 벌리고 있다.

재정 위기를 벗어날 묘안(妙案)찾기란 쉽지 않다. 술에 '건강 위해(危害) 부담금'을 매겨 건보 재정에 쓰면 일거에 해결될 수도 있지만 만만한 일이 아니다. 결국 돈 나가는 구멍을 줄일 수밖에 없다. 우선 질병별로 표준진료 지침을 만들어 들쭉날쭉한 진료비를 동일한 금액을 받도록 바꾸어야 한다. 질병 예방 교육도 힘써야 한다. 1달러를 들여 당뇨병 예방교육을 시키면 치료비 10달러가 절약된다고 하지 않는가. 건보공단 조직도 예전의 지역별로 조직이 있을 때의 장점을 살리도록 개편을 서둘러야 한다.

건강보험 사정이 급박한데도 새 정권은 건강보험에 대해 입조차 벙긋 안 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보험료 인상 같은 논쟁거리를 만들지 않으려는 의도인지 모른다. 하지만 새 정권 임기가 끝나는 2012년까지 매년 보험료를 6~8% 올려야 겨우 적자를 면할 수 있다는 최근의 건보공단 보고서는 예사롭지 않다. 보험료를 얼마나 올리고, 보험혜택을 얼마나 주며, 약값과 공단 관리비는 얼마나 줄일 것인지에 대해 정부는 하루빨리 청사진을 내놓아야 한다. 2001년 재정파탄 때처럼 위기에 빠진 뒤 보험료 인상 같은 사후처방을 내놓아서는 안 된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을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