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이상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를 돌봐온 김재학(81) 생가보존회장이 26일 오후 생가 안에서 20대 청년에게 흉기로 맞아 숨졌다. 범행 직후 경찰에 체포된 용의자는 "생가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는데 김씨가 '나가라'고 해서 화가 나서 죽였다"고 진술했다.

◆범행 현장

김모(50·경북 구미시 진평동)씨 부부는 이날 오후 6시20분쯤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았다. 생가 개방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여서, 도착이 늦었던 편이다. 따라서 상근 직원 1명은 퇴근한 뒤였고, 다른 관람객도 없었다. 이들이 생가 안으로 들어섰을 때, 마당에서 한 노인이 완전히 발가벗겨진 채 손발이 묶여 피를 흘리며 숨져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바로 그 옆에서 한 청년이 나체인 상태로 서성거리고 있었다.

김씨 부부는 즉시 경찰에 신고했고, 2분쯤 뒤 경찰이 도착했다. 그때까지 계속 현장에 있던 청년은 경찰을 보자 달아났으나, 500m쯤 떨어진 곳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그가 김씨를 살해한 장면은 생가 안에 설치돼 있던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 CCTV를 확인한 결과, 그는 이날 오후 5시45분 생가로 들어왔다. 경찰은 "용의자는 생가 공부방 앞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던 중 지팡이를 짚고 다가온 김씨가 '나가라'고 하자, 갑자기 달려들어 김씨의 옷을 벗기고 손과 발을 노끈으로 묶은 뒤 호미로 머리와 목 부위를 내리쳐 살해했다"고 밝혔다. 호미는 생가에 있던 것이었다.

◆용의자 행적

경찰에 체포된 청년은 2개월 전 구미시내 한 에어컨 설치업자에게 고용된 보조원 강모(27)씨였다. 주소지는 경북 예천군이지만 구미시내 원룸에서 혼자 생활해왔다.

강씨를 고용한 에어컨 설치업자에 따르면, 그는 범행 전날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고 한다. 항상 작업복을 입고 출근하던 강씨가 25일에는 양복을 입고 출근했다. 또 가게 주변을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주워와 사무실 책상 위에 가지런히 쌓아두었다고 한다. 그전까지 강씨가 그런 행동을 보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구미에 살고 있는 강씨의 누나도 "평소 동생이 이상한 행동을 보인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강씨가 경찰에서 살해동기로 밝힌 것도 쓰레기와 관련 있다. 범행 직후 알몸이었던 강씨는 경찰에서 "쓰레기를 주워 주머니에 넣다 보니 무거워서 바지를 벗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강씨가 정신병력이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

26일 오후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보존회장 김재학(81)씨가 경북 구미시 박 전 대통령 생가에서 피살된 직후, 경찰이 폴리스 라인을 치고 사건 현장을 통제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는

경북 구미시 상모동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는 753.7㎡(228평) 크기로, 생가인 초가집과, 생가보존회 사무실(114㎡), 분향소(119㎡) 등 3채로 이뤄져 있다. 초가집은 방 2칸, 부엌, 디딜방앗간, 마구간으로 구성돼 있다. 이곳에는 박 전 대통령이 대구사범학교 시절 사용하던 책상과 책꽂이, 박 전 대통령의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박 전 대통령은 1917년 이곳에서 태어나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20년간을 살았다.

박 전 대통령의 생가는 1993년 2월 경상북도 기념물 86호로 지정돼, 생가보존회와 구미시가 공동으로 관리해 왔다. 생가에는 해마다 약 15만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