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의 마루 깊은 한옥이었다. 할머니가 서랍을 열더니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실은 한 장을 채우지 못한 반 장의 사진이었다. 구식 결혼사진 속에 연지 곤지를 찍은 신부만 서 있었다. 신이 내리자 신랑이 무당과는 못 산다며 자신의 쪽을 떼어 간 것이다.
할머니의 본명은 한부전. 그러나 굿판에서는 '꼬추가루'란 별호로 통했다. 신이 내리기 전 시장에서 고춧가루 장사를 하여 그렇게 불리는 것인데, 누가 물으면 "독하고 매워서 그런다"고 대답했다. 보통 사람의 삶에서 따돌려진 '무당의 길'을 맵고 독하게 걸은 것이다. 1994년, 서울정도600주년을 기념하는 굿판을 만들려고 서울의 명무(名巫)를 찾아다니던 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그렇게 먼 삶이 있었다.
그 길을 다시 걸었다. 큰 아파트가 들어서서 간신히 인왕산 국사당을 올랐다. 그때만 해도 '개미', '오도바이', '돼지엄마', '꽃방집' 등 명무들이 쟁쟁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굿판을 뭉클하게 휘어잡는 이가 드물다. 한참을 쿵쾅거려도 볼게 없는 굿을 보다 황사로 뿌연 산 아래 서울로 전화를 넣었다. '꼬추가루' 할머니는 몸이 안 좋으니 다음에 보자고 했다.
서울에 있는 전통예술현장답사 강의를 청탁 받고 예비답사를 한 것이었는데, 막막해졌다. 보지 않고 믿는 것보다 보고 믿는 게 수월할 텐데, 그 멋진 사람들의 굿을 말로만 전해야 하는 것이다. 돌아오는 지하철 속에서 펼쳐 든 타블로이드 신문에 '천기누설', '친절한 운명상담' 등 그간 세련되어진 점(占) 광고만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