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무역전시장에서 24일까지 '08/09 F/W 서울컬렉션'이 열리고 있다. 아라비아 숫자와 알파벳으로 된 이 알쏭달쏭한 조합은 뭘까. 시정 5대 핵심 프로젝트를 위해 서울시가 전개하는 중점 사업 중 하나일까? '08/09 F/W'는 짐작했다시피 2008년 말부터 2009년 초까지의 가을과 겨울의 영어 낱말인 Fall과 Winter의 이니셜을 조립한 것. 그리고 '서울컬렉션'은 한국을 대표한다는 디자이너들이 여는 집단 패션쇼를 말한다.
인터넷에서는 이 서울컬렉션을 구경하려면 1회 티켓을 7000원에 판다고 적어놨다. 그러나 서울이 아닌, 뉴욕, 런던, 밀라노, 파리에서 열리는 패션쇼 티켓은 70만원을 주고도 살 수 없다. '08/09 F/W'를 위한 월드 와이드 패션쇼가 지난 1월 말에서 이달 초까지 릴레이 경기처럼 열렸다. 1월 31일~2월 8일 뉴욕, 2월 10일~16일 런던, 2월 16일~23일 밀라노, 2월 24일~지난 2일 파리. 한 달 넘게 뉴욕과 유럽 여기저기에서 이동 서커스처럼 열리는 패션쇼를 '패션위크' 혹은 '컬렉션'이라 부른다.
가장 힘이 센 패션위크는 1년에 두 차례 위에 언급한 네 도시에서 꼬리의 꼬리를 물고 개최된다. 봄과 여름을 위한 패션쇼는 9월에서 10월, 가을과 겨울을 위한 패션쇼는 2월에서 3월이다.
이런 패션위크가 6~7개월 앞서 열리는 건 일종의 선전포고다. "다가올 계절에는 이런 옷이 유행이니 이걸 사세요" 식인 것. 패션위크의 목적이 유통기한 6개월짜리 유행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각 나라의 브랜드들이 자국 여자들의 취향과 현실에 맞게 베끼는 시간일 수 있다.
그렇다면 각 도시마다 뭐가 다를까? 패션은 런던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미화된 뒤 밀라노에서 고급스러워진 다음 뉴욕에서 팔린다는 말이 있다. 뉴욕은 원래 4대 패션위크 스케줄에서 꼴찌였다. 그러나 미국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는 뉴욕이 밀라노와 파리 패션쇼의 옷을 베낀다는 누명을 벗겨 선두에 세우고자 뉴욕 스케줄을 맨 앞으로 잡았다. 맨해튼의 브라이언 파크에 대형 텐트를 세워 여는 뉴욕 패션위크는 마크 제이콥스, 도나 카란, 랄프 로렌, 캘빈 클라인 등이 주축이다. 그러나 팔리는 옷들이 대부분이라 구경거리가 좀 적은 게 흠이다.
그 다음으로 열리는 런던은 한때 패션 이튼스쿨로 불릴 만큼 쓸 만한 인재들을 잔뜩 배출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졸업작품전에나 올라야 될 옷이나 핼러윈 파티에나 입고 갈 옷들이 자주 나오는 데다, 존 갈리아노나 알렉산더 매퀸 같은 재능 있는 디자이너들은 죄다 파리로 가서 패션쇼를 열어 런던이 좀 볼품없어진 게 사실이다.
밀라노 패션위크를 언급할 때는 늘 프라다가 맨 처음 거론된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당대 여자들에게 어울릴 새로운 치마폭과 길이, 그리고 가방 드는 법마저 가장 권위 있게 제시하기에 바이블 같은 패션쇼다. 신정아가 미국으로 도망갈 때 든 초록 가방인 보테가 베네타와 대한항공 유니폼을 디자인한 지안프랑코 페레, 트렌치코트의 대명사 버버리마저 조국인 영국을 등지고 패션쇼를 여는 도시가 밀라노다.
패션위크 릴레이의 결승점은 모두가 패션 수도라고 호명하는 파리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명품 아는 거 있으세요?"라고 물으면 자판기처럼 "샤넬" "루이 비통" "디올" 같은 단어가 툭 튀어나올 게 뻔한 것처럼 파리는 패션의 메카다. 루브르 전시장을 베이스캠프로 시내 곳곳의 갤러리나 수백 년 된 레스토랑, 시체를 해부했던 병원에서도 쇼가 열린다.
지구를 대표하는 4대 패션위크에 70만원으로 못 간다면 700만원으론 안 될까? 미안한 얘기지만 꽤 힘들다. 하지만 세계적인 패션 잡지의 기자라면 가능하다. 이 집단은 패션쇼를 본 뒤 다가올 시즌의 유행을 골라 낸다. 또 유명 백화점이나 편집매장의 바이어라면 가능하다. 이 집단은 매진될 옷을 선주문해 매출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일을 한다. 빅토리아 베컴이나 에이미 와인하우스 등의 유명인사는 얼굴이 초대장이다. 이 집단은 패션쇼의 옷을 맨 먼저 입고 다니며 동네방네 소문을 낸다. 물론 희망은 있다. 브랜드의 VVIP 고객이 된다면 가능하다. 뉴욕 패션위크는 40명의 아멕스 플래티넘과 센추리온 카드고객 회원에게 티켓을 700달러에 팔았고, 이는 작년 말에 매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