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선수로 활약했던 아버지. 어머니는 1976년 몬트리올,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연이어 금메달을 목에 건 소련 여자농구대표팀 선수 출신. 아이는 운동신경을 타고날 수밖에 없었지만 부모님은 격렬한 아이스하키만은 하지 않길 바라며 아이를 링크 근처에도 데려가지 않았다. 하지만 완구점의 숱한 장난감 속에서도 하키 스틱만은 절대 놓지 않던 꼬마는 결국 러시아를 대표하는 특급 공격수로 성장해 NHL(북미 아이스하키리그) 빙판을 누비고 있다.

현 NHL 최고의 레프트윙으로 꼽히는 알렉산더 오베츠킨(23). 워싱턴 캐피털스에서 뛰고 있는 오베츠킨은 올 시즌 공격포인트(골+어시스트) 97점을 기록하며 리그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오베츠킨의 공격력에 의존하는 워싱턴은 동부 콘퍼런스 10위(33승30패8연장패)에 처져 있지만 8위까지 주어지는 플레이오프행 티켓 경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떡잎부터 알아 보았다. 17세 때 청소년대표로 러시아를 세계 정상에 끌어 올린 오베츠킨은 이듬해 역대 최연소로 러시아 성인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렸다. 2004 NHL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당당히 워싱턴 유니폼을 입었지만 리그 파업으로 인해 데뷔를 1년 미뤄야 했다.

2005년 NHL에 입성한 오베츠킨의 앞을 가로막은 이는 그 해 전체 1순위로 피츠버그 펭귄스의 지명을 받은 시드니 크로스비(21·캐나다). '하키 황제' 웨인 그레츠키의 기록을 깰 수 있는 유일한 선수라는 평가와 함께 등장한 '하키 천재' 크로스비와의 맞대결은 단숨에 NHL 최고의 흥행 카드로 떠올랐다.

오베츠킨은 첫 시즌 크로스비를 따돌리고 신인왕을 차지하며 먼저 웃었지만 지난 시즌 MVP는 크로스비가 가져 갔다. 크로스비가 부상으로 주춤거린 올 시즌엔 오베츠킨이 연일 골을 터뜨리며 신바람을 내고 있다. 80·90년대를 풍미했던 그레츠키와 마리오 르뮤(이상 캐나다)의 라이벌 대결을 떠올리는 팬들은 마냥 즐거운 눈치. 크로스비가 부상에서 복귀해 오베츠킨과 맞붙었던 9일 경기는 이례적으로 공중파인 NBC가 생중계할 만큼 큰 관심을 끌었다.

지난 1월 팀과 13년간 1억2400만달러(약 1218억원)의 NHL 역대 최고 계약을 맺으며 돈 방석에 올랐지만 그는 여전히 소탈하다. 최근 오베츠킨은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모스크바의 한 여대생과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