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백미러를 통해 전신을 드러낸 모자(母子)는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소풍이라도 가는 것일까. 하지만 반대쪽 차선 승용차 안의 일가족은 기진맥진. 기대와 노곤함이 양방향으로 갈린 휴가철 외곽도로 정체의 풍경. 제목은 '오고 가는 길'<그림>이다.
최호철(43)의 이야기그림책 '을지로 순환선'(거북이북스)이 나왔다. 만화와 회화의 경계 어느 지점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이 작가 그림의 매력은 네모 칸 하나에 여러 독립된 이야기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는 것. 표제작인 '을지로 순환선'이 대표적이다. 서울 2호선 전철 안은 말 그대로 저마다 자신의 사연을 들어달라는 이야기의 전쟁터다. 옆 자리의 노숙자가 못내 마뜩찮은 멋쟁이 여성,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 양복 차림 아저씨, 문 옆에 기대 선 짙은 피부의 외국인 노동자는 차창 밖을 바라볼 뿐이다. 커다란 전철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수많은 사람과 집들마저도 저마다의 스토리를 감추고 있다. "본 것만 그린다"는 고집을 계속해 오고 있는 작가가 따뜻한 시선과 세밀한 관찰력으로 이뤄낸 성취다. 삶의 고단함과 정겨움을 지닌 풍경들이 그 자체로 작품마다 오롯하다.
'우리 사는 풍경' '일하는 사람들' '큰 세상, 작은 목소리' '우리집 이야기' '스케치로 담은 기억' 다섯 장으로 나눈 70여 점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최호철은 홍익대 미대에서 회화를 전공한 뒤 민중미술, 만화, 애니메이션,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했고, 현재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창작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