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연합사 보급장교인 데보라 모리스(42·여) 중령 부부는 막내 딸 엘리자베스(8)를 한국말로 '아기'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첫 근무를 하던 지난 2000년 '어린이날'에 태어난 것을 기념해 한국말로 부른다고 했다. 엘리자베스는 요즘 한국말 배우기, 같은 나이 또래 한국 아이들과 함께 발레를 배우는 일에 흠뻑 빠져 있다. 특히 갓난아이 때 시작한 아동복 모델 활동을 지금도 왕성하게 하고 있다.
데보라 중령 가족의 한국 인연은 대(代)를 이어 내려오고 있다. 큰아버지는 6·25전쟁 때 미 해군대위로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다. 1960년대에는 아버지 제임스 스테포드(68) 예비역 중령이 한국에 왔다. 중·동부 전선의 미 부대에서 통신장교로 근무했고, 중대장도 맡았다. 그는 1970년대에도 한국 땅을 다시 밟았다. 작년 말 한국을 찾은 스테포드씨는 "첫 근무 땐 가난에 찌든 한국에 놀랐는데, 이제는 세계를 주름잡게 된 한국의 '기적'에 다시 한 번 놀랐다"고 말했다.
인연은 핏줄을 타고 흘렀다. 데보라 중령은 미 8군에서 법무장교로 근무하는 남편 샘 모리스(44) 중령과 함께 1998~2001년에 이어 재작년부터 주한미군으로 근무하고 있다.
한국 생활은 그의 가족 모두를 한국 팬으로 만들었다. 14살짜리 큰아들 사무엘은 김치에 관한 한 거의 '감식가(connoisseur)' 수준이다. "하루 종일 김치를 먹을 수 있다"고 말할 정도다. 가족은 설악산과 제주도를 몇 번씩이나 여행을 다녔다. 데보라 중령은 "한국은 우리 가족이 가장 중요한 시기를 보낸 곳으로 평생 잊지 못할 곳"이라고 말했다.
1945년 해방 직후 한반도에 진주한 뒤 63년째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은 이처럼 수많은 '친한파(親韓派)'를 양성하고 있다. 특히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6·25전쟁에 참전했거나 주한미군 근무 경험이 있는 미군 장병은 한국에 태생적인 '친근감'이나 '관심'을 갖는다. 대를 잇는 인연은 데보라 중령만 가진 것이 아니다.
지난해 6월 공군 작전사령부가 연 '6·25 참전 미 장병 가족 격려 행사'에는 이 같은 사연을 가진 미 공군 장병이 28명이나 모였다. 아버지와 자신, 딸에 장인까지 3대가 한국 근무 경험이 있다는 스티븐 토거슨 중령, 미 육군으로 참전해 낙동강 전선에서 전사한 외삼촌이 있는 파블로 상사…. 토거슨 중령은 "6·25전쟁에 참전했던 부친과 장인의 인연이 나를 무의식적으로 한국으로 이끌었다"며 "괌에 근무할 때 서울올림픽을 보기 위해 가족과 함께 방한해 모든 경기를 봤다"고 말했다.
한국 사람과 결혼을 하는 미군도 많다. 주한 미 공군 작전장교인 존 딕(46) 중령은 지난달 21일 1년 반 정도 사귄 한국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 경기도 평택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그는 "캐나다, 일본, 터키 등에도 근무했지만 한국은 이제 내 처갓집의 나라"라고 말했다. 아버지도 6·25전쟁 참전 용사라는 그는 "틈만 나면 경주 등 전국 곳곳을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주한미군 근무를 마치고 미국의 주류 사회에서 활동하는 예비역 주한미군들도 한미 동맹의 큰 우호세력이다. 한국에서 대대장(중령)으로 근무한 뒤 나중에 미 합참의장을 역임한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과 액션 배우로 유명한 척 노리스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한국 근무라는 인연 자체가 한국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주한미군 장병 중에는 한국 사람 일부가 지나치게 '무례하다(rude)'거나 '삶에 여유가 없고 표정이 어두워 싫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또 말이 안 통하는 불편함과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고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가족을 함께 데려온 미군이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주한미군에 따르면 현재 2만8000여 명의 주한미군 가운데 가족을 데려온 사람은 전체의 10%가 채 안 되는 2700여 명 안팎이다. 이는 전체 기혼자의 5분의 1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 육군성 통계에 따르면 미군 장병 중 결혼한 사람은 전체의 54.7% 정도이며, 이 중 장교는 68.4%, 준사관은 82.0%, 부사관·병사는 51.6%이다. 주한미군 관계자는 "독일과 일본의 경우 기혼자의 약 70% 정도가 가족을 동반한다"며 "혼자 사는 장병이 한국을 경험하기엔 한계가 많다"고 말했다. 주한미군 측은 단기적으로 가족동반 미군 숫자를 현재의 두 배로 늘리고, 장기적으로 모든 장병이 가족을 동반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주한미군이 한국을 더 이해하고 친숙하게 느끼게 만드는 것은 한미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차영구 전 국방부 정책실장은 "한미 동맹은 주한미군이라는 '천혜적 접착제'를 갖고 있는 셈"이라면서 "이를 최대한 활용해 민간 외교관을 양성한다는 생각으로 주한미군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