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위에 누운 여자가 나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여자의 눈물이 내 눈꺼풀을 적셨다. (…) 여자의 눈가에 혀끝을 갖다 댔다."
최근 출간된 천운영 소설집 '그녀의 눈물 사용법'(창비)에 실린 같은 이름의 단편은 동생의 죽음과 아버지의 무능이 겹쳐서 받게 된 상처를 견디기 위해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맹세한 여성의 내면을 그렸다. 소설집 '바늘', '명랑' 등을 통해 '육식에 몰입하는 여성들'과 그녀들의 당당한 홀로서기를 그렸던 이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 여성만으로 이루어진 유대관계에 대한 관심을 새로이 드러냈다. 소설은 주인공 여성이 아들을 잃은 여성과 동성애를 나누며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파격적인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가족'이 여성 소설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가족으로부터 탈출해 홀로서는 여성들을 그린 1990년대의 여성 소설과도 다르고, 공지영의 장편소설 '즐거운 나의 집'이나 공선옥 소설집 '명랑한 밤길' 등이 그리는 "여성이 온 식구를 책임진다"는 식의 '여성 가장형' 서사와도 차별된다.
계간 문예지 '문학과사회' 지난 겨울호에 실린 소설가 김이설의 단편 '오늘처럼 고요히'는 피가 섞이지 않은 모녀를 통해 여성 가정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한다. 남편의 파산 이후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던 '나'는 화재로 가족을 모두 잃는다. '나'는 이웃인 혜경 엄마가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자 그녀의 딸을 맞아 들인다. "집에 돌아와 혜경이를 방에 눕혔다. 쌀을 안치고 미역국을 끓였다. 아가야, 일어나. 밥 먹자."
혈연을 뛰어넘는 모녀 관계는 전경린의 신작 장편 '엄마의 집'(열림원)을 통해서도 그려진다. 소설 속의 엄마는 바람을 피운 남편을 집에 들이지 않지만, 그가 밖에서 낳은 딸 승지에게는 기꺼이 엄마가 되어 준다. 그녀의 친딸인 호은은 그런 엄마를 "나만의 엄마만이 아닌 승지의 엄마가 됨으로써, 이 세상 모든 딸들의 엄마가 된다"고 선언한다.
반면, 남성들이 만든 대안 가족은 파국을 맞는 것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윤영수의 소설집 '내 안의 황무지'에 실린 단편 '광고맨 강과 그의 사랑하는 아들'도 혈연 없는 가족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그러나 '남자와 그가 데려온 아들'의 관계는 핏줄로 연결된 가족이 나타나자 해체되고 만다.
문학평론가 정혜경 교수(순천향대 국문과)는 계간지 문학수첩 봄호에 기고한 '가족 서사의 재구성, 그 지난한 탈주'라는 글에서 최근 소설에 나타나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유형별로 분석하기도 했다. 정 교수는 소설들이 남성 중심에서 벗어나 다양한 가족 모델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을 주목하며 "최근의 문학적 움직임이 (기존의 가족에 대한) 해체와 동시에 재구성을 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