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본사 주최 '아시안 리더십 콘퍼런스'에 참석한 헨리 키신저(Kissinger) 전 미국 국무장관을 만났다. 키신저는 전설적인 인터뷰 전문기자인 이탈리아의 오리아나 팔라치가 20세기 주요 인물을 인터뷰한 책 '역사와의 인터뷰'에 맨처음 등장한다. 지난 세기 국제정치의 막전막후에서 워낙 비밀스럽고 중요한 역할을 한 '살아있는 역사'나 다름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키신저를 인터뷰한다고 하니, 대부분 "도대체 언제 적 키신저냐"는 반응이었다. 키신저가 하버드대 교수,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국무장관으로 한창 활동하던 시절이 1970년대이니 당연한 반응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제 아무리 거물이어도 까맣게 잊혀졌을 30년 전인 것이다. 서점에서도 한국말로 번역된 키신저의 책은 찾기 힘들었다. 그러나 국제문제에 대한 키신저의 견해는 여전히 미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005년 교착상태에 빠진 6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해 북한 등 참가국 대표들이 뉴욕에서 만났다. 그때 비공식 모임에 키신저가 참석했다. 당시 부시 행정부의 한 관리는 "키신저가 북한 외교관들과 같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북핵문제 해결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키신저 같은 거물이 현장에 나타나는 것은 핵문제의 심각성을 상징하면서, 또 한편으론 북한에 핵보유의 의미를 가르쳐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에 핵이 없다면 키신저가 결코 그 외교관과 나란히 앉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였다.

닉슨의 역사적인 중국방문이나 베트남전 종전, 소련과의 긴장완화 등 1970년대 미국의 역사를 바꾼 주요 사건엔 늘 키신저가 있었다. 당시 워싱턴에선 "키신저가 사라져야 닉슨이 진정한 의미에서 대통령이 된다"고 할 정도로 미국 외교정책에서 키신저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키신저는 요즘도 중동 등 각국 지도자들을 위해 컨설팅을 하고, 국제회의에 단골로 초청받는 연사다. 이번 서울 회의 둘째 날에도 국제정세 전반과 북핵문제를 거론한 연설에서 "모든 현실이 실현되기 전에는 다 아이디어에 불과했던 것 아니냐"고 말해 청중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몇 년 전 부시 행정부가 9·11 테러진상조사위를 만들었을 때도 위원장 후보에 키신저가 제일 먼저 후보로 올랐다.

키신저는 듣던 대로 현역이었다. 이번에도 공항에 내리자마자 우리 새정부 외교팀을 만날 일정부터 잡았다. 회의에 참석한 다른 나라 지도자들과의 개별면담도 가능한 한 많이 잡기 위해 고심했다. 궁금한 것도 많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많았다.

회의 일정이 끝나고 인터뷰를 위해 마주 앉았다. 하루 종일 회의와 면담에 지쳤는지 키신저는 피곤해 보였다. 그래도 북핵문제는 6자회담을 통한 협상이 최선의 해결방안이고, 세계는 경쟁보다 협력의 시대로 나아갈 것이란 생각을 힘주어 설명했다.

말을 하다가 갑자기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키신저를 보며 1971년 파키스탄 방문 중 그가 기자들을 따돌리고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키신저를 만나기 전엔 그가 과거에 쌓아놓은 그런 명성을 먹고 사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사실은 요즘도 부지런히 뛰기 때문에 그 명성이 유지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키신저가 키신저일 수 있는 것은 한창때의 값진 체험과 공부에 지금도 새로운 정보를 계속 더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흔히 국제정치는 미국 같은 강대국에서나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처럼 모든 일이 국제문제로 연결되는 나라에서 더 중요하다. 특히 현실에 발 묶인 관료와 이론만 아는 학자가 서로 무능하다고 외면한 상황에선 더더욱 현장과 이론을 다 아는 키신저 같은 전문가가 필요하다. 85세의 키신저가 이번 서울 방문 중 남겨준 생각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