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 시내 크네자 밀로샤 거리에는 불에 타 흉측하게 변한 두 개의 건물이 마주하고 있었다. 3일 전 코소보의 독립에 반대하는 세르비아인들이 몰려가 방화한 이곳의 미국 대사관 건물은 깨진 유리창과 찌그러진 대사관 현판, 곳곳의 불탄 흔적이 그대로 남았다. 대사관 벽 여기저기엔 "코소보는 세르비아 땅"이라는 스프레이 글씨가 선명했다.

미 대사관에서 50m쯤 떨어진 곳에는 그보다 몇 배 큰 건물이 폭격 맞은 골조를 흉측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1999년 나토의 공습으로 파괴된 세르비아의 군사령부 건물이다. 불에 탄 미 대사관과 폭격 맞은 세르비아 군사령부 건물은 서로 죽고 죽이는 보복의 악순환을 되풀이해 온 '화약고' 발칸 반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했다.

우정회사 PTT에 다니는 그로즈다나 코스티츠(여·28)씨는 코소보가 지난 17일 독립을 선언했을 때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너무 슬퍼 하루 종일 일을 못했다"고 말했다. 코스티츠는 코소보 주의 페치에서 살다가, 알바니아계 주민들에게 언제 살해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돌팔매질을 당하며" 거의 맨몸으로 도망쳐 나왔다고 한다. 코소보는 알바니아계가 전체 주민의 90%를 차지한다.

서방 언론이 보도하는 코소보 사태에서 통상 세르비아인들은 '가해자'로, 코소보의 알바니아계 주민들은 '피해자'로 묘사된다. 하지만, 많은 세르비아인들은 그들 역시 '혼란의 역사'에서 피해자라고 말한다.

세르비아인들이 22일 코소보와의 국경인 자린제 검문소에서 세르비아와 러시아 깃발을 펴들고, 코소보 독립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나토 평화유지군(KFOR)은 세르비아 시위대의 코소보 진입을 막으려고, 이 검문소를 일시 폐쇄했다. 철조망 건너편은 KFOR 소속의 미군 병사.

12세기 말 세르비아의 영토로 흡수된 코소보는 세르비아 정교의 대주교가 있던 성지(聖地)다. 세르비아로서는 신앙과 통치의 중심지였다. 그러던 것이 20세기 들어 발칸 분쟁이 격화되고 알바니아 민족주의 운동이 일면서, 1970년대 들어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급격히 늘어나 75%에서 90%로 확대됐다.

자영업자인 고란 바야기츠(Goran Bajagic·52)는 코소보 독립에 대해 "어느날 갑자기 국토의 15%가 잘려나가고, 미국 같은 강대국이 우리 자존심을 짓밟고 자기네 마음대로 독립을 인정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흥분했다. 택시 운전기사인 보라 노바코비치(Bora Novakovic·65)도 "손가락이 잘려나간 느낌"이라며 "한국 땅 한 모퉁이에 살던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며 독립을 선언하면, 한국인들 기분이 어떻겠느냐"고 반문했다. 드라간 드라기치(Dragan Dragic·35)씨는 "미 대사관을 공격하고 방화한 범인들은 처벌받아 마땅하다"면서도 "50만 명이 평화 시위를 벌이며 코소보 독립에 반대하는 목소리조차 매도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