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소설가 최일남(76·사진)씨가 23일 진보 성향의 대표적 문학단체인 한국작가회의(옛 민족문학작가회의)의 17대 이사장에 취임했다. 작가회의는 이날 서울 중구 예장동 '문학의집·서울'에서 고은·신경림·백낙청씨 등 회원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임시총회를 열고 최씨를 임기 2년의 새 이사장으로 선출했다.
작가회의는 지난해 12월, 출범 후 20년간 사용해 온 '민족'이라는 표현을 명칭에서 빼며 정체성을 재확립한 데 이어, 이날 대외적으로 작가회의를 대표하는 문인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최씨를 새 이사장으로 선택했다. 이번 이사장 교체는 10년 만에 보수성향의 정권이 들어선 것과도 맞물려 있어 작가회의와 최 신임 이사장의 향후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취임식 직후 기자간담회를 가진 최 이사장은 "사견"이란 말을 반복하며 말을 조심했다. 작가회의의 향후 노선과 관련, 그는 "지금이 창작의 자유를 위해 투쟁해야 할 시절도 아니지 않으냐? 작가회의의 노선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모든 일을 순리대로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 정부의 문화 정책에 대해서는 "개인적 의견일 뿐"이란 전제 아래 비판적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우리는 기본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우리 단체가 상징성도 있고 하니 가장 먼저 행동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본적인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새 정부의 영어 관련 정책 때문에 모국어가 상처 입고 '울밑에 선 봉선화'가 되면 어쩌나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먹고사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인 양 (새 정권이) 외곬으로 나간다면 문학을 하는 입장에서 무슨 말이든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로 문화계에 대한 새 정부의 관심을 촉구하기도 했다.
정부가 남·북한 문인들이 함께 만든 첫 공동 문예지 '통일문학'에 대해 일부 표현을 문제 삼아 반입 불허 방침을 정한 데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그는 "저쪽 사람들이 워낙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에 나는 처음부터 논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면서도 "그렇게 태어나 평생 그런 방식으로 자란 사람들이 쓴 글인데 우리의 대응이 좀 어른스럽지 못한 것 같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최 이사장은 그러나 "문학인은 어떤 성취보다 작품이 먼저이고, 그 바탕 위에서 사회와의 관계도 고민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정액이 묻은 손바닥을 펴 보이며 "오늘도 끼적끼적 쓰다 이 자리에 나왔다. 지금은 이러자 저러자는 구호를 외쳐서 되는 세상이 아니다"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