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실시된 파키스탄 총선에서 '반(反)무샤라프(대통령)'를 외쳤던 야권이 압승했다. 파키스탄 현지 언론은 19일 비공식 중간 개표 결과, 여당의 완패 소식을 전하면서 "무샤라프의 정치 생명도 위험해졌다"고 보도했다. 현지 신문인 '더 뉴스'와 '데일리 타임스'는 총선 결과를 '민주주의의 복수(Democracy takes revenge)' '왕(무샤라프 지칭)의 심복들은 사라졌다(All the King's men, gone)'고 표현했다.

◆시민들 "부토가 이겼다" 환호

야당 후보들은 개표 초반부터 여당을 크게 앞섰다. '더 뉴스' 웹사이트는 19일 오후 11시30분(한국시각) 현재 개표가 끝난 258석(전체 의석은 272석) 중 야당과 무소속 후보가 220석을 석권했다고 전했다. 살해된 베나지르 부토(Bhutto) 전 총리가 이끌던 파키스탄인민당(PPP)과 나와즈 샤리프(Sharif) 전 총리의 PML-N(파키스탄무슬림리그-N)이 각각 87석과 66석으로 1, 2위를 달리고 있다. 무샤라프 지지파인 여당(PML-Q)은 38석을 얻는 데 그쳤다. 개표 초반부터 야당이 앞서자, 라왈핀디에선 200여명의 청년이 '화살'과 '사자' 등 야당을 상징하는 깃발을 단 모터사이클을 타고 부토가 암살된 랴쿠앗 공원에 모여 "부토, 부토"를 연호하며 경적을 울려댔다.

여당 대변인 타리크 아짐(Azim)은 "우리는 5년 전으로 돌아가 야당이 될 준비가 됐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칼럼니스트인 안사르 압바시(Abbsi)는 "침묵했던 국민들이 무샤라프에게 '노(No!)'라고 말한 것"이라며 "죽은 부토가 이겼다"고 평했다.

◆샤리프, 9년 만의 '달콤한' 복수

이번 총선에선 무샤라프와 샤리프의 뒤바뀐 악연(惡緣)이 부각됐다. 1999년 당시 총리였던 샤리프는 군 참모총장이던 무샤라프를 기내(機內)에서 체포, 축출하려다가 오히려 그에게 군사쿠데타를 당해 실각했다. 비행기 납치 혐의로 재산을 몰수당하고, 종신형을 선고받은 샤리프는 무샤라프의 '선처'로 해외로 망명했고 "신이 언젠가 나를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샤리프 축출 이후, 무샤라프는 승승장구했다. 2002년 대통령에 올랐고, 미국의 대(對)테러 전쟁을 지원하며, 100억 달러의 원조와 든든한 정치적 지원도 받았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역전됐다. 9년간의 떠돌이 생활을 접고 작년 11월 귀국한 샤리프는 자신의 고향 펀자브 주에서 의석을 휩쓸며 재기했다. 샤리프는 19일 기자회견에서 무샤라프에게 "이제 집으로 가라"고 요구했다. 무샤라프는 부토의 PPP와 연대해 살 길을 찾고 있지만, PPP측은 "살인자와는 같이 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비록 제2야당이지만, 부토가 없는 파키스탄 야권에서 샤리프는 정국 해결의 열쇠를 쥐게 됐다. 과반 획득에 실패한 PPP는 샤리프에게 연정(聯政)을 제안했다. 샤리프는 반미(反美) 정서가 강한 이슬람 보수층이 좋아해, 미국도 그를 파트너로 끌어안는 게 앞으로 테러 단속을 계속하는 데 나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미 일간지 USA투데이는 "누가 제1당이 되든, 쿠데타로 집권한 무샤라프보다 합법적으로 선출된 새 정부와 협력 관계를 유지하기 쉬울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