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근현대사학자였던 신승하(辛勝夏·1940~2007) 전 고려대 교수가 생전에 갖은 노력을 다해 구해놓고 소장했던 중국학 관련 도서 3만권이 성신여대(총장 심화진)에 기증된다. 기증식은 13일 오전 10시 성신여대 총장실에서 열린다.

생전의 신 교수는 한마디로 국내에서 중국 관련 문헌 자료들을 개인으로서는 최다 수준으로 모은 사람이었다. 그는 1970년대 초 대만 유학 시절부터 생활비를 아껴 가며 중국 대륙에서 발간된 책들을 끊임없이 수집해 왔다. "한국의 중국학 연구 초창기에 중국을 연구하려고 해도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너무나 부족한 현실이 안타까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중국과 외교관계도 맺기 전부터 중국 책을 국내로 들여오는 일은 간단치 않았다. 이중의 장벽이 놓여 있었다. 중국측은 웬만한 자료 유출을 엄격히 금지하던 문화대혁명 시기였고, 한국에서는 중국을 '중공'이라고 부르며 적성국가로 분류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다. 중국 당국이 '내부발행'으로 분류했던 중요한 내부 정보를 담은 책을 입수하기 위해 중국인으로 위장하는 등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노력도 다반사였다. 신 교수는 김포공항으로 입국하다가 숱하게 중국 자료들을 '압수'당했다. 책 제목에 '공산당'이라는 단어만 들어간 것을 봐도 세관 직원들이 기겁을 할 정도였다. 어떤 책은 표지와 서지사항을 찢어내거나 '나중에 기관에서 구입한 것으로 처리하겠다'는 조건을 붙인 끝에 겨우 가져올 수 있었다.

3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신 교수가 모은 책들은 하도 많아 연구실과 자택에 나눠 보관해야 할 정도였다. 수집한 서적들 중에는 '북양공보(北洋公報)' '남경정부공보(南京政府公報)' 등 지난 100년 동안 중국 정부가 발행했던 관보를 비롯해 희귀 자료들이 그득하다.

아파트 거실과 모든 방의 벽면이 중국 책으로 가득 찰 정도였으니 '거실을 서재로' 캠페인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던 셈이다. 신 교수는 "집을 남들처럼 예쁘게 꾸며 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가족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라고 생전에 술회하기도 했다. 그는 1970년대부터 "오늘날 중국의 실체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며 칠판에 한자를 반드시 중국식 간체자(簡體字)로 써 가며 강의하기도 했다.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의 제자로 한국중국학회와 한국 중국현대사연구회의 회장을 지냈던 신 교수는 '중국 현대사' '중국 당대 40년사' 등의 저서를 냈으며 지난해 2월 폐암으로 별세했다.

가족들이 신 교수의 중국 서적들을 성신여대에 기증하기로 한 것은 신 교수가 80년대에 이 대학 강단에서 자주 강의를 한 인연이 있는데다가, 중국학자료센터를 설립하려 하는 등 중국학에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성신여대는 신 교수의 자료를 토대로 국내 중국학 연구의 중요한 거점이 되겠다는 계획이다. 신 교수의 유족들은 장서와 함께 대학발전기금 1000만원을 성신여대에 기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