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최근 무역인들과의 간담회에서 "정부가 용을 쓰면 기업은 더 귀찮아진다"고 했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다운 말이다. 기업인들은 흔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정부가 가만히 있는 게 기업을 더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렇다고 공무원들이 하는 일 없이 놀고 먹으며 '월급 도둑'으로 지내도 된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정부가 용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벌이지 말라는 뜻이다. 노무현 정권처럼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불균형을 바로 잡겠다며 기업을 피곤하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부가 좋은 의도를 갖고 한 일이 결과적으로 하지 않은 것만 못하게 될 때도 있다.
중소기업정책이 그런 사례다. 중소기업 지원정책의 가짓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이다. 특히 중소기업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한 금융 지원제도가 많고 그 규모도 크다.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 보증 규모만 해도 대만은 국내총생산(GDP)의 1.5% 정도인데 한국은 6%가 넘는다. 그러나 중소기업 부문의 경쟁력은 정반대다. 대만은 세계적인 중소기업이 수두룩한 데 비해 한국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경쟁력을 잃어 도태돼야 할 한계기업이 정책자금으로 목숨을 이어가고, 정작 장래성 있는 신생 기업은 실적이 없고 담보도 없다는 이유로 지원을 받기 어렵다. 기업의 기술력과 성장성을 객관적으로 잴 수 있는 잣대가 없다 보니 실력은 떨어져도 로비를 잘하는 기업이 득을 보게 돼있다. 정부가 잘하겠다고 추진한 정책이 도리어 중소기업 부문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초고속인터넷은 그 반대 사례다. 1998년 두루넷과 하나로텔레콤에 사업 인가를 내주면서 정부는 초고속인터넷사업을 기간 통신 서비스가 아닌 부가 통신 서비스로 분류했다. 지원을 해주지도 않고 요금과 약관 등에 대한 규제도 하지 않았다. 이들 신생 업체와 기존 KT 사이에 투자 경쟁이 붙어 초고속인터넷이 급속히 보급되는 동안 정부가 한 일은 거의 아무 것도 없다. 정부가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새로운 규제도 만들지 않은 덕분에 한국 인터넷 환경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물론 정부 규제가 꼭 필요한 분야도 있고,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일도 많다. 당선자는 무역인들에게 "새 정부는 기업하는 분들에게 도우미 역할밖에 할 게 없다"고 했다. 도우미가 할 일이 뭔가. '대불공단 전봇대'를 뽑아내는 것이다. 태안 주민에 대한 지원금이 관료주의 수렁에 빠져 제때 전달되지 못하는 것 같은 문제를 바로 잡는 것이다. 기념비적인 사업이나 번듯하고 생색나는 일보다 이처럼 행정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게 더 시급하고 중요할 수도 있다.
몽골제국 초기의 명재상이었던 야율초재(耶律楚材)는 "한 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한 가지 해로운 일을 없애는 것만 못하고, 한 가지 일을 만들어 내는 것은 한 가지 일을 줄이는 것만 못하다(興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고 했다. 칭기즈칸의 후계자인 오고타이가 "아버지가 이룩한 대제국을 개혁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느냐"고 한 데 대한 답변이다.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는 기존의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게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영어 공교육, 광역경제권 개발, 지분형 주택, 휴대전화 요금 인하 등 설익은 정책을 쏟아내며 '용을 쓰고 있는' 대통령직인수위에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