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이 지나다보니 아침에 머리가 띵해서 아무 생각도 안 난다."

요즘 온 국민의 시선이 쏠리고 있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한 한 인사의 솔직한 토로다. 그는 "처음엔 자정 넘어서까지도 일을 했지만 요즘은…"이라면서, "너무 숨이 가쁘다"고 털어놓았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비서실의 한 관계자도 같은 얘기를 했다. "당선자의 외부 일정이 너무 많다. 마치 선거 유세 다니듯이 현장 방문 일정을 잡는 데 대해 내부에서도 '이러면 안 된다'는 우려가 많다"고 했다. 조금 숨을 돌리자는 얘기다.

이명박 전략팀의 '진단'도 비슷했다. 한 관계자는 "이번 주 들어 몇몇 여론조사에서 이 당선자의 지지율이 5~6% 포인트 빠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면서 "당선자는 인수위 출범 이후 휴일도 없이 매일 몰아쳐왔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이 '피로현상'을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국민들의 피로현상과 함께, 최근 들어 이 당선자와 인수위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영어 몰아치기'가 결정적 계기가 된 듯하다. 한나라당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몰아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정부조직법 개편 문제도 브레이크가 걸려 어떻게 결말이 지어질지 모를 상황에서 '영어로 수업' '영어로 말하기' '외국 안 가도 생활영어 할 수 있게' 등 영어 프로그램이 쏟아지니 이게 도대체 뭐냐고 묻는 유권자들이 부지기수다." 한 국회의원의 말이다.

급기야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까지 나섰다. 그는 "모든 것은 다 단계가 있다. 5년치 10년치 정책을 인수위가 한꺼번에 발표하는 게 옳지 않다"면서 "중요한 것은 준비를 철저히 해 국민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러니 대통합민주신당 등에서 '조용한 환호'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절망뿐이었는데 이렇게 가면 4월 총선을 치를 공간이 생길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대통령 취임식이 3주나 남은 상황에서 이런 우려가 나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에 따른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요인은 4월 총선 때문이 아니겠는가 싶다. 이 당선자는 4월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 확보'를 지상 과제로 삼고 있다. 공개석상에서 여러 차례 이런 속내를 밝히기까지 했다. 국무총리를 인선하는 과정에서도 초기엔 '총선 요인'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앞으로 두 달 조금 더 남은 총선에서 평가를 받으려면 뭔가 유권자들의 마음을 확 사로잡을 '큰 선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조급증에 사로잡힌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그러려면 새 정부가 출범하기 이전부터 뭔가 손에 잡히는 카드를 준비해야 하고, 그러다보니 인수위 관계자나 이를 구경하는 객꾼들이 모두 함께 울렁증을 느끼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내에서 박근혜 진영과 볼썽사나운 '공천 갈등'을 빚고 있는 것도 국민들의 피로감을 더하게 하는 요인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명박 진영에서 조만간 이 문제를 놓고 내부 전략회의를 소집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 가지만 유념했으면 좋겠다. 유권자들은 지금 걱정이 태산이다. 미국발(發) 세계경제 침체, 그에 따른 국내 주식시장의 요동은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펀드 손실이 얼마나 계속될지 몰라 끙끙대는 샐러리맨들, 설은 다가오는데 마음이 가볍지 않은 주부들…. 이들에게 새 정부 담당자들이 '설익은 정책'으로 불안감을 주는 것은 고문 행위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