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5년간 경제부총리(재정경제부 장관)는 한 달에 두세 번씩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주재했다. 이 자리엔 산업자원부 장관, 농림부 장관, 건설교통부 장관 등 경제 부처 장관들이 대부분 참석하게 돼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후반으로 갈수록 장관 출석률은 급격히 떨어지고 차관들이 대신 왔다. 회의에서 다루는 현안도 부동산 대책 등 대형 이슈는 사라지고 서비스업 규제 완화와 같은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들로 바뀌었다.

우리나라 경제 운용 컨트롤타워(지휘탑) 역할을 해야 할 경제부총리의 힘이 빠지고, 그가 주재하는 회의도 초라해진 것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16일 발표한 이명박 정부의 경제 운용 시스템의 핵심은 이처럼 껍데기만 남은 경제부총리 제도를 폐지한 것이다. 앞으로 경제부총리가 사라지면 대통령이 경제 부처들을 직할하는 체제로 바뀐다. 대통령이 경제를 직접 챙기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를 합쳐서 신설되는 기획재정부에 '예산권'이라는 무기를 줬다. 예산은 정부 부처들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기획재정부가 다른 부처들을 데리고 대통령의 지시를 실행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개편한 것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이경숙 위원장이 1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 브리핑룸에서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하고 있다.


◆"대통령이 경제를 직접 챙길 것"

인수위 관계자는 이날 "경제 대통령을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으로 당선된 만큼 대통령이 경제를 직접 챙길 것"이라고 말했다.

인수위는 한때 미국 백악관 관리예산처(OMB)를 모델로 예산권을 청와대가 직접 관장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 청와대의 부처 통솔력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발상이었다.

기획재정부에 예산권을 주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청와대의 경제 챙기기 의지는 향후 5년간 경제정책 결정 과정에 줄곧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정책수석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대통령의 경제정책 방향을 보좌하는 수준이었다.

새 정부에서는 명칭이 '경제수석'으로 바뀐다. 경제수석은 앞으로 경제 부처들과 적극 협의하면서 대통령의 경제 챙기기에 앞장설 전망이다. 그 영향력이 노무현 정부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는 셈이다.

인수위 관계자는 "경제수석은 대통령의 충실한 '메신저'로 활약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힘 실린 기획재정부

신설되는 기획재정부가 명실상부하게 경제 부처들의 중심으로 자리매김을 할 가능성이 커졌다. 기획예산처의 재정전략, 재정경제부의 경제정책, 국무조정실의 경제정책 조정기능을 한데 묶어 기획·조정 기능을 통합한 부처가 된다. 경제부총리라는 간판을 떼어내는 대신 예산·금융·세제의 3대 핵심 권한 중 예산과 세제를 갖게 된다. 기획재정부 장관은 그동안 경제부총리가 하던 역할을 맡게 될 전망이다. 경제정책조정회의나 자유무역협정(FTA) 전략 등을 결정하는 대외경제장관회의 등을 주재하게 된다.

다만 외환위기 당시 방만한 권한으로 민간에 군림했던 재정경제원 같은 거대 부처가 아니라 정부 내부에서만 힘을 발휘하는 조직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이 인수위의 생각이다.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과거 재경원과 같은) 공룡 부처가 되지 않을 것이며 관(官)이 민(民)을 주도하는 체계도 안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때처럼 대형 경제 현안을 갖고 있는 다른 경제 부처 장관들이 정치인 출신이거나 기획재정부 장관보다 경력이나 연조가 높을 경우 기획재정부 장관의 지휘력이 약해져 부처 간 혼선이 빚어질 수도 있다.

◆모피아의 시장 규제 견제해야

현재의 금융감독위원회를 확대 개편한 금융위원회가 금융정책과 금융기관 감독기능을 총괄하게 된다. 재정경제부의 금융정책 등의 기능을 넘겨받고 금융정보분석원(FIU)도 가져온다.

금융위원회는 예금보험공사신용보증기금, 기술신용보증기금까지 관장하게 된다. 민간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는 부처가 탄생하는 셈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기관 인사에 개입하는 등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했던 과거 모피아(과거 재무부 출신 관료들을 마피아에 빗댄 말)의 부활을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