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년 동안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지낸 후버는 서류 귀퉁이에 낙서하는 버릇이 있었다. 어느날 후버가 여백이 거의 없는 보고서를 읽다 한 쪽 끝에 "가장자리에 신경 쓸 것(Watch the borders!)"이라고 썼다. 물어볼 엄두조차 못 낸 참모들은 국경수비대에 캐나다와 멕시코 국경에 이상 징후가 있는지 알아봤다. 우왕좌왕하던 FBI 요원들은 1주일 뒤에야 'borders'가 '국경'이 아니라 '가장자리'를 뜻한다는 걸 깨달았다.
▶1991년 국내 첩보를 담당하는 영국 정보기관 MI5 국장에 스텔라 리밍턴이 임명됐다. 파파라치들이 집요한 추적 끝에 그녀가 쇼핑백을 들고 있는 모습을 찍어 공개했다. 그녀에겐 '주부 스파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리밍턴은 "사진이 찍힌다는 것은 총격에 노출될 수도 있다는 뜻"이라고 걱정했다. 리밍턴은 은퇴 후 백화점 중역으로 취직했다. 첩보원 시절 갈고닦은 엿듣기 실력이 뛰어나 매장을 한 바퀴만 돌아도 고객 반응을 정확하게 알아냈다고 한다.
▶미 중앙정보국(CIA) 직원들은 CIA를 '회사(company)'라고 부른다. 영국 해외정보기관 MI6은 내부에서 '기업(firm)'으로 통한다. 조직 전체가 자신들과 관련된 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한다. 영국은 1989년 관련법이 만들어지기까지 MI5의 존재를 인정조차 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모사드가 국장 임명 사실을 공개하고 직원을 공개 모집하기 시작한 것도 최근 일이다.
▶김만복 국정원장이 그제 북한 통일전선부장과의 대화록을 자신이 유출했다고 시인하고 사퇴의사를 밝혔다. 김 원장이 대선 전날 방북한 사실이 얼마 전 알려지자 국정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때 심은 기념 소나무에 표지석을 설치하기 위해 방북한 것이라고 둘러댔다. 의혹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국정원장이 '대화록'이라는 것을 외부에 흘려 제 발등을 찍은 격이 됐다.
▶김 원장의 돌출행동과 '노출벽(癖)'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고향사람들을 국정원에 불러 견학시켜 총선을 염두에 둔 사전 선거운동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중학교 동창회 홈페이지엔 자기 휴대전화 번호를 올려놓았다. 아프가니스탄 인질사태 때는 인질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자화자찬 보도자료를 내 외신들까지 경악했다. 이런 이가 정보기관 수장(首長)으로 일하는 사이 나라와 국정원 안에서 얼마나 희한한 일들이 더 벌어졌을지 궁금하고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