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비자금 의혹을 수사 중인 조준웅 특별검사팀이 가장 먼저 노린 것은 이건희 회장의 집무실인 승지원(承志園)과 이학수 부회장, 김인주 사장 등 그룹 핵심 임직원의 집이었다.
그간 검찰과 삼성 주변에선 특검팀의 첫 압수수색 대상지로 삼성 본관이나 계열사가 우선 거론됐지만, 허를 찌르는 기습을 감행한 것이다. '대비한 곳엔 건질 것이 없다'는 수사 경험이 감안된 것으로 보였다.
통상 회사 자료는 사무실에 놓아두지 집에 보관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 때문에 수사팀이 뭔가 찾아내려는 목적이나 정보를 갖고 압수수색을 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은밀히 두어야 할 기밀이나 대책회의 자료 등을 말한다. 이 경우 수사팀은 삼성 내부의 소식통으로부터 '제보'를 받았을 수 있다. 김인주 사장의 별장이나 상대적으로 직급이 낮은 최모 부장과 김모 부장의 집이 압수수색에 포함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승지원에 나간 수사관이나 최 부장의 집에 투입된 수사관 수는 10여명으로 비슷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의혹을 폭로했던 김용철 변호사도 이번 압수수색에 도움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압수수색 대상자들의 면면을 보면 수사의 칼날이 비자금 조성과 관리 의혹을 겨누고 있음이 분명해진다. 이 부회장과 김 사장은 삼성의 비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룹 내 2·3인자이고, 최광해 부사장, 전모 상무, 최모 부장, 김모 부장은 전략기획실에서도 재무 파트를 담당했던 핵심 실무진이다. 비자금 업무에 관련됐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재무라인'인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는 그간 전략기획실 재무 간부들이 비자금 업무를 다뤄왔다고 말해왔다. 수사팀은 압수수색 자료 분석 결과와 내부 제보 등을 바탕으로 추가 압수수색을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날 특검의 기세는 이건희 회장 소환 등 향후 강도 높은 수사를 예고하는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압수수색은 철통 같은 보안 속에 동시 다발적으로 이뤄졌다. 수사관들은 이날 오전 8시쯤 은색 스타렉스 승합차 1대와 검정색 토스카 등 승용차 2대에 나눠 타고 서울 이태원동 승지원에 도착했다. 비슷한 시각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이 살고 있는 도곡동 타워팰리스 등에도 수사팀의 스타렉스 승합차가 진입했다.
한옥으로 지어진 승지원과 2층짜리 양옥으로 지어진 부속건물은 3m 높이의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수사관들이 들어가 대문을 걸어 잠근 뒤 5시간 동안 출입자는 아무도 없었다. 오전 11시40분 양복 차림의 40대 남자 7명이 문을 열고 나왔지만, "우리는 특검과 관계 없다"라고 말하고는 취재진을 따돌린 뒤 금방 사라졌다.
낮 12시40분 수사관 6명은 흰색 서류 봉투 2개와 노란색 서류봉투 2개, 노트북 가방 2개와 공구 가방 등을 가지고 승지원 건물을 나오자마자 승용차를 타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비슷한 시각 이 부회장 집으로 갔던 수사팀도 철수했다. 마지막 압수수색은 전 상무의 대치동 집으로 오후 3시에 끝났다.
이날 압수수색이 진행되는 동안 승지원 주변에는 취재진 50여명과 취재차량 등이 몰려 혼잡을 빚었고, 주변을 지나던 외국인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신기한 듯 취재 광경을 지켜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