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진보주의 정권은 우리 사회를 좀 더 평등하게 만들기 위해, 또한 모든 개인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고, 대북문제에 있어서는 대결보다 대화를 통해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그러나 이번 대선 결과가 보여주듯이 국민들은 진보주의에 등을 돌렸다.
싱거운 소리 같지만, 진보가 패한 것은 투표자 중에서 진보 후보보다 보수 후보 지지자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수 후보를 지지한 이유는 사람마다 서로 다를 것이다. '경제' '실용' '자유' '자율'과 같은 가치를 선택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무차별 평등'에 대한 거부감이나 '친북' 노선에 대한 불안 때문에 혹은 노무현 정부에 '짜증'이 나서 진보 후보의 반대편으로 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결과를 놓고 진보주의가 추구해온 핵심적인 가치 자체를 국민들이 거부한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평등'과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고, 그 세 가지가 현재 우리 사회에 충분히 달성되었다고 평가할 사람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보주의 정권의 문제는 목표 설정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방법과 수단의 잘못에 있었다. 아무리 좋은 이상도 방법이 비현실적이면 공상으로 보이고, 수단이 나쁘면 뜻하지 않은 부작용과 희생을 수반한다.
이번 선거에서 심판을 받은 것은 진보주의 정당만이 아니다. 정치권 전체가 심판을 받았다. 87년 대선에서 90%에 육박하던 투표율이 92년과 97년에는 80% 수준으로, 2002년에는 70% 수준으로 하락했고, 이번 대선에서는 63%에 그쳤다. 당선인의 지지자보다 더 많은 유권자가 기권한 사실은 좌파·우파를 떠나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증가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이번 대선을 통해 국민이 명실공히 나라의 주권자임이 확인되었다는 점이다. 87년 직선제가 부활된 후 10년간을 주기로 우파에서 좌파로, 좌파에서 우파로 국민들의 뜻에 따라 정권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내란'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으며 또한 악의적인 보복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정치학자들은 이를 두고 흔히 '절차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고 평가한다.
이제 민주주의의 '내용'을 채울 때가 됐다. 서로 경쟁하는 복수의 정당들이 우리 시대에 필요한 가치를 주창하고 그 가치를 달성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국민들이 정당이나 인물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판을 짜줄 때 '민주주의'에 내용이 생긴다. '개 꼬락서니 미워서 낙지 사는' 부정형 선택이 아니라 '낙지가 좋아서 낙지 사는' 긍정형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패배를 당한 진보주의 정당들은 지금부터라도 '내용'을 찾아야 한다. 국민들이 이명박 대세론에 휩쓸렸다느니, 보수 언론의 선동에 넘어갔다느니 하는 따위의 인과(因果) 혼동의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대책은 없다. 얼굴만 적당히 바꾸어 놓고 우파 정권의 실정(失政)을 기다려 재집권하겠다는 비겁한 생각도 버려야 한다. 큰소리로 '죄송하다'고 여러 차례 사죄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일도 아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내용은 밝히지 않은 채 그저 잘못했다는 말만 되풀이하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일시적인 '위장 회개'로 의심받기 쉽다. 평등과 인권과 평화가 여전히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성장과 자율과 질서와 같은 다른 가치를 희생하지 않은 채 그 가치들을 달성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내고 이를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고품질의 정당이 되는 길이고, 다시 국민의 선택을 기다릴 자격을 갖추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