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치러지는 제22대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에 단독 출마한 장석춘(51) 전국금속노조연맹 위원장. 중도개혁이라는 말로 자신의 성향을 표현한 그는 인터뷰 서두에 브라질 룰라 대통령을 언급했다. "룰라도 금속노련 위원장 출신이지만 대통령이 됐을 때 노동자 입장만 두둔하는 정치를 한 건 아니다." 실용주의 노선으로 꼽히는 룰라 대통령처럼 그 역시 합리적인 노동운동, 국민의 지지를 받는 노동운동을 펴겠다는 것이다.
LG전자 구미공장에서 줄곧 일하면서 대화와 타협을 강조해온 그는 중앙 무대에는 처음이다. 서울 무대에서도 그의 합리주의가 통할까. 4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건물 내 금속노련 사무실에서 이뤄진 장 후보와의 인터뷰는 그렇게 조금 공격적인 질문으로 시작됐다.
―LG전자 구미공장에서 주로 일했는데, 중앙무대의 텃세가 심하지 않을까?
"단일후보로 나올 수 있었던 것부터가 한국노총 내 여러 계파로부터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미 금속노련 위원장 시절부터 조직을 통합하는 리더십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한다. 현 이용득 한국노총위원장과 각 산하 노련 관계자들이 지지선언을 했다. 텃세는 없을 것이고, 조직을 아우르고 단합시킬 자신이 있다."
실제로 장 후보가 LG전자 경영진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온 것도 이런 리더십을 인정받은 덕분이라고 배석한 금속노련 관계자가 귀띔했다.
―스스로를 중도개혁주의자라고 했다. 왜 그런가?
"노동운동이 과거와 같이 두드리고 부수는 투쟁만 갖고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민주노총보다 한국노총의 투쟁성이 약하다고 하는데, 완전히 틀린 소리다. 모두가 다 변하는 마당에 그런 투쟁노선을 유지해야 하나."
―이용득 위원장의 합리주의 노선과 유사하다는 느낌이다.
"그렇다. 이 위원장이 '사회개혁적 조합주의'의 첫 삽을 떴다면, 나는 길을 닦고 그 길 위로 달릴 수 있게 하겠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노동운동은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운동도 이제 대안 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장애우, 독거노인, 결식아동, 소년소녀 가장 등 사회 취약계층 지원사업 등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어야 하고,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한 노사 자치시대를 열어나갈 것이다."
―'파트너십'이란 무엇을 말하나?
"회사측이 노조를 정식 대화상대로 보라는 것이다. 지금 월급 문제만으로 싸우는 노조는 별로 없다. 복리후생이 그만큼 좋아진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노조를 파트너로 보지 않는 기업들이 많다는 점이다. 우리는 머슴이 아니다. 일한 대가로 임금을 받는, 회사측의 파트너로 인정받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지난해 LG계열사에서 분리된 한 업체에서 구조조정을 해야 했다. LG전자는 구조조정 대상자들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었지만 내가 나서서 임금인상을 자제하는 대신 구조조정 대상자 400여명을 수용할 것을 요구했고, 사측도 이를 수용했다. 파트너십이란 이런 것이다. 나도 무리한 요구인지 알지만 우리도 희생하고 회사도 희생해서 같이 일하던 식구를 구한 것이다. 또 다른 예는 LG전자의 전자레인지 생산부문의 품질 혁신이다. 세계 최대 생산규모를 자랑하면서도 생산단가가 낮아 적자를 면치 못하자 노조가 사측에 인위적 구조조정을 자제하는 대신 품질 및 생산성 향상을 약속했다. 그 뒤 흑자로 돌아섰다. 이는 노사 간 신뢰가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 기업과 정부가 진정 노조를 경영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투명한 경영과 공정한 법 집행을 이행한다면 노동자도 각고의 노력으로 경제 살리기에 동참할 것이다."
그는 그러면서 자신이 노동운동을 시작한 계기를 언급했다. 1987년, 1988년 속칭 '노동계 대투쟁' 시절 일반 노조원에서 노조간부로 전면에 나선 이유가 오로지 "인간다운 대접을 받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파트너라는 말에 '동등한 입장'이란 뜻을 담고 싶은 듯했다.
―비인간적 대우를 받았다는 뜻인가?
"당시에는 인사과나 노무과 직원들이 돌아가신 조상님보다도 더 무서울 정도로 위압적이었다. 인간적 존중을 받는 문화가 전무했고, 대투쟁 시절 당시 집행부가 미약해서 파업현장에서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다시 지도부가 꾸려졌는데, 그때부터 전면에 나서게 됐다. 1989년 노조 조직부장으로서 금성사 파업을 적극적으로 이끌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란 표현을 썼다. 친기업은 곧 반노조가 되지 않을까?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경제 활성화를 기치로 내걸었다. 누구나 바라는 바다. 그러나 경제발전은 1500만 노동자를 배제하고서는 절대 있을 수 없다. 차기 정부가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은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각종 규제를 완화한다는 측면에서나 가능하지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하고, 노동자를 배제하는 정책하에서는 불가능하다. 만일 노동자를 배제하고 일방적 희생만을 강요한다면 투쟁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미 정책연대 협약서에 정책협의회 정례화 등 무수한 안전장치를 설정했다. 나는 이 당선자를 믿는다."
―경제발전을 위해 임금이나 고용 문제에서 노조의 양보나 희생이 필요하다는 국민적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브라질 룰라 대통령은 금속연맹 출신으로 노동자의 표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막상 국정을 운영하려니까 노동자 측면에서만 운영하기가 어려웠다. 룰라 대통령은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설득을 통해 노동자들의 이해를 구했다. 그 결과 룰라 대통령은 다시금 노동자들의 인정을 받았다."
―2006년 노조 조직률은 10.3%로 사상 최저 수준이었다. 또 대기업 노조가 주도하는 파업에 대해 국민들의 반감은 상당하다.
"IMF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기업 M&A(인수·합병), 해외 투기자본 유입 등 산업구조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에 따라 노조도 인식 전환이 필요했지만 시대상을 따라가지 못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노동운동은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임금인상 위주의 활동을 전개해 왔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 현상을 해결하지 못했다. 앞으로 노동운동은 산별 노조 결성을 통해 중소영세 비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고용·복지·사회적 의제를 다루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 산별 노조 결성이 양극화 문제 해소의 해법이다."
LG전자 노조위원장 출신 중도개혁주의자
장석춘 위원장은
경북 예천 출신으로 1981년 LG전자(당시 금성사)에 입사한 이후 TV기술자(품질관리)로서 줄곧 구미지역에서 활동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계기로 노조활동을 시작, 1989년 노조 조직부장으로 금성사 파업을 주도했다. 1999년 LG전자 노조위원장에 당선된 뒤 3선에 성공했고, 2006년에는 한국노총산하 전국금속노조연맹 위원장에 당선됐다. 중도개혁 성향의 장 위원장은 사측과의 교섭능력 및 노조원과의 친화력이 뛰어난 인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