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이 왜 수학과 과학에서 남학생만큼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지 연구하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인데, 이제는 반대로 남학생이 왜 여학생보다 모든 면에서 뒤떨어지는지 호들갑스러운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리더십과 학업, 스포츠 등에서 남자보다 뛰어난 여자를 지칭하는 '알파 걸'이란 단어는 지난해 대한민국에서 유난히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외무고시 합격자 31명 중 21명이 여자이고 신규 임용 판사 90명 중 57명이 여자라고, 여학생들이 반장과 학생회장을 도맡는다고 전하는 언론 보도에는 우려와 걱정이 묻어 있었다. '남자들이여 정신 차려라, 분발하라!' '남성시대의 종말이 멀지 않았다' 하는 비장한 각성들이 곳곳에서 이어졌다.

그런데 의문이 생겼다. 정말 남자들은 그동안 아무 것도 안하고 경쟁력을 상실한 채 뒤처져 버린 것일까. 2008년, 주위를 둘러보면 그 어느 때보다 멋진 남자들이 더 많이 눈에 띄는데 말이다.

"정장 차림에 운동용 흰 양말을 신더라." "남자가 여자의 코트를 받아 주는 게 예의인데, 한국에서는 늘 아내가 남편 코트를 받아 주더라." 몇 년 전 한 외국인 친구가 한국 생활에서 낯선 장면으로 꼽은 것이었다. 꽤 오랫동안 '스타일'은 한국 남자들의 약점이었다. 하지만 요즘 남학생들은 확실히 달라졌다. 티셔츠, 운동화, 교복 하나에도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고 휴대전화와 디지털 카메라도 개성에 꼭 맞는 것, 가장 멋진 것을 선택하려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지난 한 해 동안 한국을 찾은 세계 유명 패션디자이너와 유명 브랜드의 마케터들은 공통적으로 '한국 남성들의 잠재력'에 주목했다. 이제 막 패션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한 중국이나 자기 스타일에 변화를 주기 꺼리는 보수적인 일본과 달리 한국 남성, 특히 나이 어린 층일수록 기꺼이 모험을 감수할 줄 알며 까다로운 선택을 즐긴다면서!

옷맵시에 신경 쓰는 남자처럼 한심한 종족은 없다고 일본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잘라 말했지만, 멋을 내고 까다롭게 구는 것은 감수성과 호기심의 표현이다. 자신에 대한 관심에서 미감의 발휘가 시작된다. 이들이 환호하는 멋, 스타일, 감성, 개성 등의 단어는, 외형이 또 다른 콘텐츠이고 디자인이 철학이자 종교로 인정받는 21세기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자기 내부의 신념이나 스타일, 개성과 선호가 확실치 않으면 누군가를 모방하게 되고 다른 사람이 만들어 주는 삶의 방식에 의존하게 된다. 취향과 의견이 확실치 않은 사람이라면, 변화를 만들어 갈 수도 없다. 그러니 자기 표현에 열중하는 이 남학생들이 자라면 정치와 경제, 세계 평화 같은 거대 담론에만 몰입하느라 어머니와 아내가 골라 주는 옷과 음식과 집에 익숙한 이전 세대 남자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 아니 그동안 무시해 온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자기 옷차림에 신경 쓰는 남자라면 길거리에 함부로 침을 뱉지 않을 것이다. 비싸기만 하고 맛없는 음식점에서 불평하는 남자라면 품질과 서비스가 형편없는 기업에도 할 말을 다 할 것이다. 까다로운 취향을 발휘해, 외국 것을 엉성하게 베낀 영화와 음악을 지적해 댈 것이고 폭탄주 난무하는 술자리도 바꾸려 들 것이다.

알파 걸에 밀려 졸지에 '베타 보이' 취급을 받고 있지만, 고시 합격과 승진 말고도 인생에서 관심 가져야 할 것이 많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그들은 자신의 삶에 있어 더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할 것이다. 애플 창립자인 스티브 잡스는 입버릇처럼 "미칠 정도로 멋지고 근사한 제품을 탄생시키라"고 했는데, 이들이야말로 미칠 정도로 멋진 것이 무엇인지 알아채는 첫 세대로 제 몫을 하지 않을까. 그러니 새해에는 이들이 옷 입고 밥 먹는 평범한 일상에서 당당하게 멋 부리고 까다롭게 감성을 표현하도록 격려하자. 소란스럽고 장난기 넘치고 멋 부리기만 좋아하는 듯 보이는 이 소년들이 멋진 '알파 맨'으로 성장해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삶의 질 향상' '경쟁력 향상'이라는 과제를 훨씬 더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