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기도하면 다 낫는데…, 어머니가 하느님인데…,어머니께 말씀드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어머니께 말씀 드리자."
친구가 입원을 하면서, 걱정하실까봐 친정 어머니에겐 알리지 않았다는데, 친구 남편이 저런 얘기를 하네요. 싱클레어를 자극하고 성장시키는 데미안 같지요. 평소 그의 안정감이 어디서 오는지 알겠습니다. 그는 자기 운명 앞에서 투정하거나 도망치는 이가 아니라 자기 운명을 올곧게 헤쳐가는 이일 겁니다. 아마도 그는 어머니에게 하느님 같이 크고 넓고 깊은 사랑을, 모자람이 없는 사랑을 받고 자란 모양입니다. 에바 부인의 사랑을 받고 자란 데미안처럼 말입니다.
'데미안'에서 어머니 에바는 신비하고 묘한 존재지요? 원래 '에바'는 모든 생명을 품고 낳고 거두는 대지의 여신이잖아요. 에바라는 이름이 암시하듯 그녀는 차라리 우리 마음속의 여신입니다. 당연히 그 여신은 크고 멀고 강압적인 존재가 아니라, 내 깊디깊은 내부에 숨어있는 중심이며 동시에 기어이 그 중심에 도달하도록 '나'를 인도하는 운명적인 힘입니다.
에바는 궁극의 힘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에바의 사랑은 특별합니다. 에바의 사랑은 구걸도 아니고, 요구도 아닙니다. 에바의 사랑은 힘이며, 자연적인 의지입니다. 에바가 이제 겨우 자기 내부로 눈을 돌리는 법을 알아가기 시작한 싱클레어에게 해준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사랑은 청해서는 안 되는 거야. 요구해서도 안 되지. 사랑은 우리 내부에서 확신에 도달하는 힘을 지녔어. 그것은 끌려오는 것이 아니라 끌어당기게 되는 힘이야."
우리 내부에서 확신에 도달하는 힘, 그 사랑을 믿는 자는 세상을 믿지 않고, 그 사랑에 순응하는 자는 제도에 순응하지 않습니다. 알 때문에 부화할 수 있지만 알에 갇히지는 않는 새처럼 그는 세상을 탓하지 않고 세상을 견디며 거기서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운명을 보는 자입니다. 아, 그 유명한 문장, 기억하시지요?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
아프락사스는 선한 신이 아닙니다. 제도에 순응하는 것 이상을 모르는 자에게 차라리 그는 악마지만, 그렇다고 아프락사스를 악의 신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그에게는 존재를 정화시키는 힘이 있으니까요. 지고의 선이면서 극도의 악인 그는 여러 방법으로 존재를 정화시켜 자기 운명을 보게 만드는 신인 거지요.
그런데 당신의 운명은 어떤 건가요? 에바는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꿈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조언하는데, 어쩌면 우리가 지금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서 하고 있는 일,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들 속에 그 해답이 들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아직도 우리는 엉뚱한 곳에서 허우적대며 헛손질하고 있는 것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