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학 교수

한국의 통화 위기와 그에 이어진 구조개혁은 한·일 경제관계를 본질적으로 바꿔놓았다. 1960년대 이후 전통적인 한·일 경제관계는 앞서가는 일본을 한국이 뒤쫓는 식이었다. 한국에 일본이란 시장성이 입증된 제조업 기술의 원천이자 중간재·자본재의 공급처였다. 그리고 기술력 격차와 무역 역조가 늘 문제이기도 했다.

하지만 통화 위기의 해일로 한국 경제가 묵은 때를 깨끗하게 씻은 이후 한·일 간 위상은 역전했다. 한국은 단기간에 구조조정과 부실 채권 처리를 단행해서 성장으로 회귀했고, 일본은 이에 적잖은 자극을 받았다.

자유무역협정(FTA)에서도 한국은 일본보다 빨랐다. 한국은 칠레에 이어 미국과의 FTA 를 타결지었고, 그 결과 여전히 농업 보호를 유지하면서 FTA를 하려는 일본의 한계를 뛰어 넘었다.

중국·인도·러시아 등 신흥시장 공세에 있어서도, 그리고 소득 격차의 확대와 그 배경에 있는 고용의 양극화에서도 한국은 일본에 선행했다. 일본은 한국을 보고 글로벌화의 정(正)과 부(負)의 양면을 실감했다. 한국이 일본을 뒤쫓는 시대는 끝나고, 글로벌화의 물결 속에서 일본이 한국을 선행지표로 보는 ‘위상 역전’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2003년부터 시작한 한·일 FTA 교섭이 불행하게도 좌절된 배경엔 양국 간 정치 마찰도 있지만 이 같은 위상 역전의 현실을 두 나라 모두 이해하지 못했던 측면이 크다. 한국의 여론은 여전히 기술격차론과 무역역조론에 지배되었고, 일본 역시 글로벌화의 테스트시장으로서의 한국의 가치에 눈뜨지 못했다.

그렇다면 위상 역전의 시대, ‘경제대통령=이명박’ 신정권은 일본으로부터 무엇을 얻어내야 하는 것일까

우선 한·일 간 협력을 통한 리스크 경감일 것이다. 과거와는 거꾸로 이젠 한국이 일본보다 앞서가는 데 따른 이른바 ‘선행(先行) 리스크’를 짊어지는 경우가 많다. 일본과의 협력·제휴를 통해 한국은 이런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이미 엔지니어링업계 등 일부에서는 한·일이 공동으로 대규모 안건에 응찰하는 예가 늘고 있다. 정보의 공유나 기술 분담, 공동 파이낸스에 의해 특히 신흥시장에 산재하는 다양한 리스크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는 아직 한정적이다. 한국은 기업 의욕이 높고, 중소기업도 일정 수준까지는 잘 크지만 ‘중견기업’으로 올라서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투자은행 혹은 컨설팅 기능이 강한 일본의 종합상사나 일본의 벤처시장을 활용해 리스크를 경감하는 구조를 협력해서 만드는 의미는 크다.

두 번째는 표준화다. 한국은 환경 기준이나 기업 지배구조에서 중국에 선행하고, 기업의 환경 대응도 앞서고 있어서 두 나라가 협력하면 ‘한·일 표준’을 형성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산업구조가 비슷하기 때문에 폐기물을 내지 않는 ‘그린 물류’ 등에서도 협력의 여지가 큰 것이다. 위상 역전 시대에는 하드 기술로 어느 쪽이 선행하는가보다 표준화에 큰 의미가 있어 전략적인 메리트를 이끌어낼 수 있는 분야를 특정해야 한다.

셋째, 사람 이동에 연동하는 자격의 공통화다. 고용, 특히 젊은 세대의 일자리 창출이 한국의 최우선 과제라면 그 해결은 제조업보다 아직 개선 여지가 있는 서비스업 쪽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사실은 일본의 서비스산업도 낙후되기는 마찬가지이나 미슐랭 평가에서 파리를 누르고 세계 1위가 됐던 음식업이 상징하듯 서비스의 다양성과 전문 인재 형성 등의 점에서 일본의 서비스시장은 깊이를 갖고 있다.

한국의 젊은 기업가가 우선 일본의 서비스시장에서 큰 뒤 일본보다 앞서 글로벌화하는 한국 시장에서 독자적 아이디어를 전개할 수 있게 된다면 참으로 바람직한 모델이 될 수 있다. 위상 역전의 시대, 한국엔 이런 대일(對日) 경제전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