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은 인류 역사와 함께한 질병이다. 북한에는 100여 만명의 결핵환자가 있고, 어린이 환자만도 3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북한 어린이 결핵환자들은 영양 부족과 면역력 저하, 노후한 의료시설과 의약품 부족으로 죽음의 날만 기다리고 있다. 이런 북한 어린이들을 돕자고 지난 10월 말 북한결핵어린이돕기 범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한 이윤구(李潤求·78) 공동총재. 그는 6·25전쟁 후 20여 년간 세계기독교협의회 중동 파견 특별대표, 유엔아동기금(UNICEF)의 이집트·인도·방글라데시 대표 등 평생을 '구호'와 '봉사활동'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8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울산 자택에서 서울로 오가며 북한 결핵 퇴치 사업과 국민대통합운동에 나서고 있는 그를 만났다.

―은퇴할 나이에 북한 결핵 어린이 돕기 '전도사'로 변신하셨는데.

"인생에 은퇴는 없나 봐요. 한국선명회 총재를 그만두었을 때(1996년)가 내 나이 65세여서 조용히 살려고 했는데…. 내가 북한 결핵 퇴치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이종욱 박사 때문이었지요.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던 이 박사가 작년 5월에 돌아가시기 직전 스위스 제네바에서 저녁을 함께했어요. 그때 '북한 결핵 돕기에 나서달라'고 내게 부탁하더라고요. 북한은 식량난도 문제지만 결핵환자가 급증하고 있어 안타깝다는 것이었지요. 그 말이 결국 유언이 됐고, 지금 저는 그것을 실천하려고 애쓰고 있는 셈이지요."

―북한의 결핵 실태는 어떤지요.

"북한에는 '두 개의 핵'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무기인 '핵'이고, 다른 하나는 '결핵'이에요. 핵무기는 북한이 스스로 판단해 없앨 수도 있어요. 하지만 결핵 문제는 북한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어요. 의약품도 없고, 의료시설도 변변찮고…. 외부의 도움이 없으면 북한의 결핵 환자들은 약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한 채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어요. 굶는 것도 가슴 아프지만 영양실조로 결핵에 걸려 죽음으로 내몰리는 것은 더 비참하잖아요."

―어린이 결핵 환자에게 특별히 관심을 쏟는 이유가 있는지요.

“북한 어린이도 우리 민족의 미래예요. 우리 단체 임원 한 분이 함경도의 한 고아원을 방문하고 온 적이 있었어요.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결핵에 걸려 여러 합병증을 앓고 누워 있는 어린아이들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고 해요. 이런 어린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우리가 죄를 짓는 것입니다. 북한 어린이들을 이런 상태로 방치해둔다면 통일이 된 뒤 우리가 무슨 낯으로 그들을 대하겠어요.”

―성금 모금은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지난 10월 말부터 대대적으로 모금하고 있는데 두 달 만에 벌써 6억원이 넘었어요. 이건 정말 큰 성과입니다. 그러나 아직 2만여 명분 약값밖에 안 됩니다. 기업들의 참여도 많지 않고요. 하지만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3만원씩 내는 돈으로 북한 결핵 어린이를 살릴 수 있다는 기적을 이뤄보고 싶습니다.”

―어떤 분들이 성금을 보내시던가요.

“어느 날 전화가 왔어요. 그는 ‘나는 현재 노숙자인데 가족이 없다. 5000원이 전 재산인데 보내도 되겠느냐’고 하는 것이에요. 그런 말을 하는 그에게 어떻게 그 돈을 보내달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눈물만 날 뿐이었지요. 이뿐이 아니에요. 3만원을 보내겠다는 아주머니의 말에 영수증이 필요하면 영수증을 보내드릴 테니 연락처를 달라고 했더니 내 아들도 결핵을 앓아 봐서 결핵의 고통을 잘 안다며 지금 가정부 일을 하기 때문에 더 이상 전화하기가 어렵다고 끊더군요. 이처럼 어려운 형편에서도 내주시는 귀중한 ‘3만원’ 성금들이 계속 쌓이고 있어요.”

―북한에 또 ‘퍼주기’를 하려는 것이냐며 냉소적인 이들도 있을 텐데요.

“우리가 북한에 보내는 것은 돈이 아니라 결핵약입니다. 결핵약을 빼돌린다고 해도 누군가 결핵약이 필요한 사람에게 갈 것이니까 우리는 걱정하지 않아요. 북녘의 결핵 환자를 방치한다면 통일이 된다고 해도 그들의 치료비는 모두 우리의 부담입니다. 통일비용을 먼저 지불했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북한 돕기를 오랫동안 해오셨는데요.

“구호단체인 선명회 총재를 맡았을 때 아프리카 돕기에 나섰어요. 그런데 아프리카에 가보니 오히려 이들이 ‘같은 민족인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는다는데 그쪽부터 먼저 도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순간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이후 북한에 식량 돕기 사업을 시작했고, 사리원 등에 국수 공장도 지어주고, 평양에 제3병원 등을 짓는 데도 일조했지요.”

―정치 분야에서는 북한 돕기가 논란이 많은데요.

“약품이나 식량, 병원 짓기 등 인도주의적 도움은 지금보다 더 크게 하고, 정치적 도움은 까다롭게 하면 돼요. 북한을 돕는 의미를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면 되지요.”

―평생을 봉사와 구호로 사시는데 특별한 철학이 있습니까.

“나는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지만 목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봉사하기 위해 공부했어요. 남을 돕기 위해 사는 것이 나의 삶이지요. 한국전쟁 때 겪은 일을 지금도 가슴에 새기며 살고 있어요. 전쟁 직후 군산의료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전쟁 고아 한 명이 생활고를 비관해 양잿물을 마시고 실려 왔어요. 의료진의 도움으로 간신히 소생했고 저도 삶의 의욕을 잃지 말라고 설득했죠. 그런데 제가 친구들과 다른 곳에 놀러 갔다 온 사이 아이가 죽었어요. 놀러 다녀온 사이 한 생명을 놓쳤다는 죄의식에 평생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지요.”

북한 결핵 어린이 돕기 사업의 앞으로 계획은.

“북한 결핵 어린이 돕기 사업의 일환으로 2009년 부활절까지 성금 모금을 계속할 계획입니다. 우선 올 성탄절을 맞아 북한 결핵 어린이 돕기 특별 헌금 모금을 해달라고 전국 교회에 호소했어요. 올 성탄절부터 내년 부활절까지 30억원, 내년 부활절부터 후년 부활절까지 300억원을 모아 북한 결핵 퇴치에 나설 계획이에요. 한 가정에서 3만원을 내면 북한 어린이 한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어요. 결핵약과 영양제 6개월치를 줄 수 있는 것이지요.”

이윤구 공동총재는

평양 출생으로 강원 원주에서 초·중·고교를 다닌 그는 당시 교회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영어를 익혔다. 평소 ‘무(無)소유’를 주장하고 실천에 옮기려 하고 있다. 울산의 자택도 아는 사람이 빌려준 것이다. 생활비는 유엔 직원 연금(월 2000달러)으로 조달하고 있다. 유엔아동기금 인도·이집트·방글라데시 대표와 유엔아동영양위원회 사무국 국장 등 유엔산하기구에서만 15년간 근무했다. 1995년 김영삼대통령 시절, 선명회 회장과 범종단 북한수재민돕기 추진위원장으로 북한 주민돕기에 앞장서 쌀 등 식량 100만여�을 북한에 보냈다. 인제대 총장,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지냈고,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 캠프에서 국민통합특위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