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말은 가시덤불 속에 핀
하얀 찔레꽃의 한숨 같은 것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한 자락 바람에도 문득 흔들리는 나뭇가지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무수한 별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거대한 밤하늘이다
어둠 속에서도 훤히 얼굴이 빛나고
절망 속에서도 키가 크는 한마디의 말
얼마나 놀랍고도 황홀한 고백인가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이해인/황홀한 고백〉
찬미 예수.
당신의 성탄을 앞둔 세상은 여전히 거룩함보다는 화려함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성탄 전야는 화려한 사람의 축제가 되어버렸고 그 밤은 한반도에서 가장 요란하고 잠들지 않는 밤이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사람의 죄입니다.
사랑의 허언이 난무하는 성탄 전야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젊은 시절 그 밤에 저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취기였고 진실이 아니라 욕망이었음을 술이 깬 숙취의 그 아침에 뼈저리게 후회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시를 쓸 때마다 손을 씻는다는 어느 시인처럼 사랑을 고백할 때는 몸도 마음도 깨끗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그때였습니다. 첫사랑을 할 때 몇 번이나 양치질을 하고 그 소녀를 만나러 갔던 것처럼 가장 맑고 향기로운 시간에 가장 빛나는 사랑이 강림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찬미 예수.
당신의 사랑론(論)은 '고린도전서(前書)'에 전합니다. 바울이 자신이 세운 고린도 교회에 처음 보낸 16장의 편지인 그 전서 13장에 당신의 사랑론이 담겨있습니다.
바울은 그 처음에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다' 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고 했습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을 사랑의 명제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몸이 뜨거운 사람의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 아니라 번개처럼 한순간에 영혼을 사로잡는 것이며, 온화하고 부드러운 것이 아니라 기름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 사랑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하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이니 '믿음 소망 사랑 중에서 사랑이 제일이다'는 낡은 명제는, 더는 사람의 사랑을 가르치는 말씀이 될 수 없다는 건방진 생각을 했었습니다.
찬미 예수.
혹 당신도 얼마 전 TV를 통해 방영된 '24kg의 아내'라는 방송을 보셨는지요? 성인 조로증이라는 희귀한 베르너 증후군을 앓는 아내 장미향씨와 그런 아내를 사랑하는 키 작은 남편 박상기씨의 사랑을 보셨는지요?
베르너 증후군으로 살과 뼈만 남은 24kg의 아내. 마치 살아있는 미라처럼 변해버린, 시력과 청력이 떨어지고 조금만 부딪쳐도 몸에 상처가 생기고 진물이 나는 아내를 돌보는 남편. 그 역시 '난쟁이'라는 장애를 가졌지만 15년 동안 한결같이 아내를 위해 밥하고 머리를 감겨주며 상처를 치료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당신의 사랑론을 인정했습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고린도전서의 사랑이 바로 거기 있었습니다.
그 방송을 보던 밤에, 펑펑 울면서 그 사랑을 보던 밤에 저는 두 사람의 사랑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으로 이름했습니다. '세기의 사랑'으로 명명됐던 사랑들도 그 사랑 앞에서는 기름지고 배부른 사랑이었습니다. 내가 읽고 썼던 그 어떤 사랑의 시보다 찬란한 사랑의 시가 거기 있었습니다.
없는 것까지 다 잃고, 몸서리쳐지는 세상 가장 밑바닥에서,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나은 살아있는 고통 속에,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한다는 것이 희망이며 사랑인 그 부부에게 당신의 사랑은 분명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랑 앞에 그 어떤 사랑도 호사일 뿐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한 아픈 사랑도 사치였습니다.
찬미 예수.
올 성탄 전야에는 저도 누군가에게 ‘무수한 별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거대한 밤하늘’ 같은 ‘황홀한 고백’을 하고 싶습니다. 저의 소원을 허락하신다면 거룩하고 고요한 밤에 함박눈을 내려 축복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