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니 제 이름이 인기 검색어로 떠있더군요. 기사마다 ‘성형미인’이란 타이틀이 붙어있고, 악플이 주렁주렁 달려있었죠.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제가 갑자기 사람들 관심을 확 받게 되니… 무서웠어요.”

지난달 25일 열린 ‘성형모델 선발대회’에서 2등을 차지한 서지효(26)씨. 지난 2주 동안 그녀는 인터넷 상에서 화제의 인물이었다. 서씨의 ‘성형 전후’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았고, 네티즌들은 관련 기사를 열심히 블로그에 퍼날랐다. ‘예상대로’ 악플이 쏟아졌다. “고친 게 그거냐” “성형수술 권장하는 거냐” “가서 공부나 더 해라”….

여성 포털 사이트 마이클럽이 주최한 이 대회의 취지는 ‘끼와 열정은 있지만, 외모 콤플렉스로 인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모델의 길을 열어준다’는 것. 공고가 나가자 금세 500여 명이 몰렸다. 주최 측은 서류심사와 면접을 통해 6명을 뽑아 무료로 성형수술을 해줬고, 회복 후 본선대회를 열어 1, 2, 3위를 뽑았다. 평가 항목에는 용모, 카메라 테스트, 개인기, 장래성 외에 ‘성형수술 후 얼마나 예뻐졌는지’가 포함됐다.

서지효씨의 수술 전(왼쪽)과 후.

그녀가 수술한 부위는 눈, 코, 턱, 팔뚝과 가슴. 담당 의사와의 상담을 거쳐 10월 중순 수술이 이뤄졌다. 여러 겹으로 나있던 쌍꺼풀을 자연스럽게 하나로 정리했고, 코끝을 날렵하게 세웠다. 각진 턱은 고주파를 이용한 교근축소술로 볼륨을 줄였고, 두툼한 팔뚝은 지방흡입을 했다. 빈약한 가슴은 식염수를 넣어 부풀렸다. 부위별 ‘수술 전후’ 사진은 성형외과 홈페이지에 그대로 공개됐다.

2등인 서씨가 1등보다 더 화제를 모았던 건 화려한 이력 때문. ‘의대 중퇴, 포항공대 졸업’ ‘국내 굴지의 대기업 회사원’이라는 간판이 눈길을 끌었다. 대체 ‘잘나가는’ 그녀가 뭐가 아쉬워 ‘성형 모델’로 나섰을까. 쏟아질 비난과 악플을 감수하면서? 그녀의 답변은 이랬다. “성형수술 했다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잖아요. 남한테 잘못한 것도 아니고.”

고등학교 때까지 전교 1, 2등을 놓치지 않았다는 그녀는 “공부 잘하면 무조건 의대에 가는 줄 알고” 2000년 조선대 의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아픈 사람을 보면 같이 아픈 성격 때문에” 2년 만에 중퇴, 수능시험을 다시 봤고, 2002년 포항공대 기계공학과에 합격했다. 지난해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에 입사했다. 멀쩡히 직장 잘 다니던 그녀가 성형모델 대회에 나선 건 순전히 우연. 서씨는 “지난 9월 인터넷 서핑을 하다 마이클럽 사이트에서 공고를 봤다”며 “솔직히 ‘공짜로 전신 성형해준다’는 데 혹했다”고 했다.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오랜 꿈도 마음속에서 꿈틀거렸다. “나이도 많고 인형처럼 예쁘지도 않지만, 이 기회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제가 원래 어릴 때부터 욕심이 많아서 하고 싶은 일이 많았는데 연기는 그 모든 걸 일로 할 수 있으니까요.”

대회 2위에 입상하면서 서씨는 성형외과 전속모델, MTM 전속연기자로 활동할 기회를 얻게 됐다. 연기수업, 영화, CF, 잡지 표지모델 활동 등을 지원받는다. 이미 두 차례 화보 촬영을 했고, 3일에는 연예인들과 나란히 ‘RNX 패션쇼’ 무대에도 섰다. 그녀는 “기회가 닿는다면 꼭 연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성형수술’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명쾌했다.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개인이 선택할 문제죠. 수술 안 하고 자기 얼굴에 만족하고 살면 좋은 거고, 수술해서 자신감을 찾을 수 있다면 하는 게 좋은 거 아닌가요?”

하지만 현실은 글쎄…. 한국에서 ‘나 성형수술 했다’고 공개하기란 쉽지 않은 일. 성형수술이 ‘보편화’된 연예계에서조차 성형 의혹을 받은 대다수 연예인들이 ‘살이 빠진 거다’ ‘화장술을 바꿨다’며 교묘히 논란을 빠져나가는 것만 봐도 그렇다. 당당한 그녀도 쏟아지는 시선과 비난을 감당하긴 어려웠다. 서씨는 “처음엔 악플을 보고 속상해서 울었다”며 “내가 이런 말 들을 정도로 잘못했나 싶더라”고 했다. “처음엔 놀랐지만 이젠 괜찮아요. 저랑 상관없는 사람들이고, 어차피 모두가 나를 좋게 평가할 수는 없으니까.”

문제는 주변 사람들이다. 그녀는 “부모님, 그리고 회사 사람들 때문에 조심스럽다”고 했다. “저희 집이 워낙 보수적인 분위기라…. 공무원인 엄마는 과년한 딸이 이런 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게 싫으신가 봐요. ‘공짜로 성형수술 받는 데 당첨됐다’고만 했었는데, 부모님이 기사 보고 아셔서 집안이 발칵 뒤집혔어요.” 회사에서도 입장이 난처해졌다. 그녀는 “직원들끼리 기사를 돌려 읽고, 내가 지나가면 뒤에서 수군대는 것 같다”고 했다.

‘성형모델 대회’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도 곱지 않다. 한 네티즌은 “결국은 ‘외모 지상주의’ 논란만 불러일으킨 게 아니냐. 우리도 외국처럼 성형 이벤트가 늘면서 성형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심어줄까 걱정된다”고 했다.

마이클럽 허정임 팀장은 “영화 ‘미녀는 괴로워’를 모티브로 한 대회”라며 “후보들은 성형수술 후 외모만 바뀐 게 아니라 긍정적인 마인드로 변했고 성격도 밝아졌다”고 했다. 하지만 ‘미녀는 괴로워’처럼, 미운 오리새끼가 성형수술 한 방에 백조로 거듭난다는 설정이 현실에서도 과연 가능할까.

“수술 결과에 만족하냐”고 물었더니 그녀가 답했다. “제가 너무 큰 기대를 했었나 봐요. 전신 성형이라기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친구들도 ‘고친 거 맞느냐’고 자꾸 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