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1941년 7월 10일 폴란드 동부 변경 지역의 예드바브네라는 인구 3000명의 작은 마을에서 1600여 명의 유대인이 무참하게 학살된 사건을 다룬 책이다. 책이 출간되기 앞서 이미 2000년 4월에 예드바브네의 학살을 다룬 TV 다큐멘터리가 방영됐고, 이어서 5월 5일에는 유력 일간지 ‘공화국’(Rzeczpospolita)이 예드바브네의 학살에 대한 르포를 게재한 바 있다. 미국의 유대계 역사가 얀 그로스(Jan Gross)의 ‘이웃들’이 폴란드어로 첫 출간된 것은 2000년 5월 19일이었다.

600만 명이 학살된 홀로코스트의 규모로 보면, 예드바브네의 이 학살은 크게 주목을 끌 만한 사건은 아니다. 문제는 학살의 주역이 나치가 아니라 유대인들과 이웃에 살던 폴란드인들이었다는 점이다. 예드바브네의 비극이 역사의 긴 침묵을 뚫고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논쟁은 곧 역사적 진실과 거짓, 기억과 망각, 집합적 유죄와 무죄, 가해자와 희생자 등의 이항 대립적 구도로 나누어지면서, 독일의 역사가 논쟁에 버금가는 첨예한 논쟁으로 진화했다. 그로스의 문체나 논리 전개가 선정적이라는 일부의 지적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나치가 패망한 이후인 1949년 5월과 1953년 11월 웜자 지구 재판소에서 열린 재판 기록과 생존자들의 증언 등을 근거로 그로스가 파악한 진실은 실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예드바브네의 유대인들은 나치가 아니라 오랜 이웃인 폴란드인들의 손에 학살되었다는 것이다.

책에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1941년 7월 10일의 참상, 얼굴 없는 나치가 아니라 같이 살아 온 이웃이 다른 이웃을 학살한 이 야만의 광경은 차마 옮기지 못할 정도로 끔찍하다. 나치 헌병대 마을 분소에서 마침 부역을 하고 있었던 몇몇의 유대인들만이 오히려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 역사의 아이러니 앞에서 나도 경악한다.

바르샤바 구 시가의 폴란드 과학아카데미 역사연구소가 주최한 이 책에 대한 토론회에는 백 수십 명의 역사가와 저널리스트들이 몰려 들었으며, 그로스의 발표가 끝난 직후에는 그 충격으로 수 분 간의 침묵이 흘렀다고 토론회에 참가한 폴란드의 친구들은 전한다. 침묵을 깬 것은 이제 와서 그처럼 불유쾌한 과거를 들춰내는 저의가 무엇이냐는 한 저널리스트의 고함소리였고, 온갖 고함과 격정적 외침 등이 숨죽인 울음들과 뒤섞여 토론이 제대로 진행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로테스크한 학살과 관련된 격앙된 감정을 가라앉히고 보면,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하다. 조그만 시골 마을의 평범한 폴란드인들이 홀로코스트의 능동적 참여자이자 가해자였다면, 자명한 것으로 간주되어 온 현대사 서술의 구도나 전제 자체가 흔들려버리는 것이다. 폴란드인들도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나치즘과 2차대전의 희생자였다는 전제 위에 선 폴란드 현대사 서술의 기조나 가해자·피해자·방관자의 삼분법적 구도 위에서 폴란드인들을 방관자의 범주로 서술했던 홀로코스트의 역사 서술이 뒤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그로스 자신도 홀로코스트 서술의 삼분법적 구도가 현실의 복합성을 담지 못한다고 주장하면서, 실제 일어난 각각의 대량 학살은 모두 고유한 ‘상황의 역학’을 갖고 있다고 역설한다. 그 근저에는 홀로코스트의 원죄를 나치에게만 뒤집어씌우는 견해의 단순함을 비판하고, 각각의 행위자들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더 많은 유대인들을 구할 수 있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유대인들의 가장 중요한 이웃이었던 폴란드인들이 제대로 행동했다면, 유대인들의 희생을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로스의 ‘이웃들’이 도발적인 것은 바로 이 점에 있다. 예드바브네의 학살에 대한 센세이셔널한 서술을 넘어서, 폴란드인들에게서 나치의 희생자라는 역사적 지위를 박탈하려는 논리가 부담스러운 것이다. 희생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역사적 사실로 제시한 것이다.

일부의 악당들이 아니라 평범한 폴란드인들이 유대인을 학살했다는 이 사실은 브라우닝(Christopher Browning)이 101 경찰 예비대대의 평범한 독일인들이 홀로코스트의 집행자였음을 밝힌 것과 같은 효과를 지닌다. 평범한 독일인들과 폴란드인들이 나치의 희생자이자 동시에 공범자였다는 논리의 정치적 함축은 참으로 짊어지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한다.

폴란드의 전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폴란드의 선한 이름’을 지키려는 ‘애국주의’ 역사가들에 의해 ‘얀 그로스의 100가지 거짓말’과 같은 책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들은 다시 유대인의 음모설을 조작하면서 폴란드인들의 애국심에 호소했다. 이 과거사에 대해 사과한 폴란드 대통령 크바시녜프스키 등에 대한 욕설 섞인 비판과 함께, 예드바브네의 비극을 자기성찰의 계기로 삼으려는 모든 시도는 비애국적인 행위로 폄하되기도 했다.

희생자 대 가해자의 이분법적 구도로 볼 때, 그로스의 주장은 자칫 폴란드인들의 역사적 희생을 무시하고 가해자로 몰고 가는 논리로 오해되기 쉬운 것도 사실이다. 2차 대전에서 누구 못지 않게 큰 희생을 치른 폴란드인들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또 목숨을 걸고 유대인들을 숨겨주고 생명을 지켜 준 선한 폴란드인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가해자 대(對) 희생자의 이분법으로는 역사현실의 복합성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드바브네의 사건이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역사의 행위자들이 희생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한편으로 폴란드 학계의 역사서술은 ‘희생자’라는 자기 규정에 갇힘으로써, 이러한 역사의 복합적 현실을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 더 중요하게는 ‘희생자’라는 역사적 위치가 주는 자기 정당성이 자신들의 과거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가로막았다는 점이다. 1946년의 키엘체 포그롬, 1968년의 공식적 반유대주의,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일각에 자리 잡은 ‘유대인 없는 반유대주의’와 같은 부정적 사회현실은 세습적 희생자라는 뿌리깊은 역사의식의 한 결과인 것이다.

인간은 참으로 현실과 대면하기를 두려워하는 동물이다. ‘악의 평범성’과 같은 현실과 마주칠 때는 더욱 그러하다. 비판적 역사학의 길은 얕은 도덕심으로 현실을 가리기보다는, 당당히 대면하여 그 추한 현실을 드러내는 데 있다. 그러나 폴란드 사회나 한국 사회의 역사의식은 지나치게 도덕적이다. 그것도 아주 얕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