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톄와(劉鐵娃) 베이징외국어대 국제정치학 교수

1937년 12월 13일은 중국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2차 대전 기간에 인류를 가장 놀라게 한, 아니 인류 역사상 인류를 가장 놀라게 한 ‘난징(南京) 대도살(大屠殺·중국인들의 굳어진 표현)’이 일어난 날이다. 일본 군인들은 이날 중국의 아들딸 30만 명의 목숨을 무정하게 빼앗아 갔다. 올해 12월 13일은 이 참극 70주년 되는 날이었다. 중국 각지에서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 재난 중에 세상을 떠난 동포들의 모습을 되돌아보았다. 우리 중국인들은 이날 전 세계가 이 재난에 대해 갖고 있는 관심을 보았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 심지어는 당사자 일본도 포함한 30여 개사의 외국 언론사들이 중국의 추념 활동을 상세히 전 세계로 전했다.

2차대전이 끝난 후 세계 각국은 모두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국가 외교목표와 국제정치 구조 속에서 자신들의 국가의 위치를 새로이 정립했다. 비록 각국마다 역사적 배경은 다르지만 당시 대체적인 추세가 있었다. 그 추세는 역사를 정확히 직시하고, 성숙한 외교를 펼치고, 역사가 남긴 문제를 순리에 따라 처리한다는 것이었다. 독일은 그 흐름에 따라 신속하게, 보다 완전하면서도 이성적인 민족정신을 재정립했다. 그럼으로써 독일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다시 설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역사문제를 감추려 들고, 시간을 거꾸로 되돌아가는가 하면, 역사를 부정하기까지 했다. 그 결과 일본은 정치대국이 되는 데 실패했다. 최근 들어서는 일본 정부가 역사문제를 잘못 처리한 일 때문에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최근 들어 난징 대도살에 관한 국제사회의 관심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갈수록 많은 외국 전문가와 학자는 물론 보통사람들도 이 문제에 대한 역사적 증거 찾기와 고증, 그리고 토론회에 참여하고 있다. 자발적으로 책을 출판하거나, 오디오 비디오를 제작하기도 한다. 그런 작업을 통해 그들은 그 재난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밝히고 있다. 기록영화 ‘난징’이 내년도 오스카상 후보에 올라간 것도 이 불행한 역사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에는 난징대학 난징대도살 역사연구소 장셴원(張憲文)교수가 주동이 되고, 전국에서 70여 명의 전문가가 편찬에 참여한 27권짜리 ‘난징 대도살 사료집’이 출판됐으며, 뉴욕타임스와 영국의 BBC 등 서방매체들이 여러 차례 난징을 취재했다. 미국과 네덜란드, 캐나다 등의 국가들이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결의안을 내 일본인들이 역사적 교훈을 받아들이고, 역사를 바로 볼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역사는 결코 말살될 수 없는 것이다. 역사를 제대로 정시(正視)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문제는 한 국가의 외교 품격과 관련된 문제일 뿐만 아니라, 지역정치 질서와 세계질서 내에서의 지위를 결정해주는 문제이기도 하다. 일본이 1951년에 서명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분명하게 실려 있다. “일본은 극동 군사법정을 인정하며, 일본 국내와 국외에서 유엔 전쟁범죄 법정이 내린 재판결과를 받아들인다.” 이 구절은 국제사회가 전쟁범죄에 대해 내린 판단을 일본이 인정한다고 한 것이며, 이 문제의 해결에 해당 국가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가 내린 판단과 비국가행위주체가 내린 판단도 인정한다고 한 것이다.

일본이 역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느냐, 국제적인 협조가 이뤄지는 가운데 역사문제를 처리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동아시아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