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말 위에서도 책을 읽어야 하는 현대인들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한해 동안 Books 섹션을 열심히 읽어주신 독자들을 위해 ‘2007 올해의 책 10권’을 다시 골랐다. 외부 전문가들의 추천을 바탕으로 열띤 토론을 거듭한 끝에 픽션 4권, 논픽션 6권을 선정했다. 책을 고르는, 개인적인 취향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여기 소개하는 책들을 통해 세상을 읽고, 새해를 설계하는데도 도움이 되시기를 바란다.

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9500원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가 가운데 한 사람인 박완서는 올 가을,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를 통해 다시 한번 그녀의 팬들을 매료시켰다. 지난 10월 발간된 이 책은 소설집으로는 드물게 두 달 만에 10만부 넘게 팔려 나가며 각종 베스트셀러 문학 분야 수위에 올랐다. 인간의 이중적 행태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이 작품은 중산층의 속물화된 일상과 허위의식을 고발하고(수록작 ‘마흔 아홉’),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여성이나 모성이 겪는 불합리한 세태의 풍경을 밀도 있게 그려낸다(수록작 ‘친절한 복희씨’). 또한 젊은이들의 애정행각을 두고 ‘넘칠 때 낭비하는 건 죄가 아니라 미덕’이라고 한다거나, ‘모든 인간관계 속엔 위선이 불가피하게 개입하게 돼 있어. 꼭 필요한 윤활유야’라며 이 세상에 대한 역설적 비판을 드러내기도 했다.

선비답게 산다는 것 

안대회 지음 | 푸른 역사 | 1만2000원

‘한평생 시름 속에 살아오느라/ 밝은 달을 봐도 부족했었지/ 이제부턴 만년토록 마주 볼 테니/ 무덤 가는 이 길도 나쁘진 않군.’ 이승을 떠나는 심정을 담담하게 노래한 이양연의 시에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는 “냉정하게 또는 해학적으로 자신의 죽음을 떠올려 자신을 성찰하고 마음을 비웠던” 조선 선비의 결기를 포착한다. 탐독가 유만주는 스물한 살부터 요절 전까지 13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쓴 일기집 ‘흠영(欽英)’으로 부동산중개·금주령 등 18세기 후반 사회상을 고스란히 남겼고, 광적인 수집가 김광수는 맘에 드는 골동품·서화라면 즉석에서 옷이나 재물을 건네고 맞바꿨다고 한다. 이 책 ‘선비답게 산다는 것’에 등장하는 그들은 빈한함 속에서도 낭만을 잃지 않았고, 엄격함 속에 오히려 여유롭게 풍류를 즐겼다.

집으로 가는 길 

이스마엘 베아 지음 | 송은주 옮김 | 북스코프 | 9800원

“평범한 힙합 소년에게 어른들은 소총을 쥐어 주고 전장에 내몰았다”고 이스마엘 베아(27)는 말한다. 쿠데타와 내전으로 피범벅이 된 시에라리온에서 열두 살에 정부군 소년병으로 끌려가 2년 간 살인·고문·약탈을 일삼았던 청년이 잔인하고 비참한 고국에서의 나날들을 ‘집으로 가는 길’에 토로했다. 1998년 미국에 온 뒤 살육의 기억들로 인해 아직껏 불면증에 시달린다는 그는, ‘해방’을 노래하면서 민간인마저 ‘광기’에 마비시킨 내전 세력, 아프리카를 절망의 땅으로 일반화한 채 내전과 학살을 방관하고 무기를 팔고 다이아몬드를 사들여 돈을 챙기는 외세를 함께 비판한다. 정이 넘쳤던 전쟁 전 고국 농촌의 정경, “늘 열린 마음과 애정으로 세상을 비추는 달처럼 살라”고 하셨던 할머니를 떠올리기도 한다. 원제 A Long Way Gone

사치의 나라 럭셔리 코리아 

김난도 지음 | 미래의창 | 1만1000원

김난도 서울대 교수(소비자학)는 ‘사치의 나라 럭셔리 코리아’에서 우리 사회의 사치품 중독과 과소비 전염 현상, 그 욕망의 실상과 배경을 해부했다. 우리 사회는 남의 부를 승복할 줄도 모르고 존경할 만한 부호가 없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어느덧 소비는 신앙이 됐다. 저자는 사치품 소비 유형을 4가지로 분류한다. 덜 알려진 명품 브랜드를 찾는 과시형, 선망하는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려 무턱대고 사들이는 질시형, 스스로 초라해질 것이란 공포에서 해방되려 명품을 소비하는 환상형, 그리고 준거집단을 맹목적으로 따라 구매하는 동조형이다. 이 책은 우리의 경우 질시형 소비가 많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평등의식과 계층 의식 속에 기형적 소비현상을 보이는 한국 사회를 향해 “합리적 소비가 행복에 이르는 길”임을 설파한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1만3500원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올 한해 미국에서 출간된 소설 가운데 단연 최고 화제작이다. 인터넷 서점 아마존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26주 연속 톱 10에 들었다. 아프가니스탄 출신 망명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는 전작 ‘연을 쫓는 아이’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고난에 찬 조국의 근대사를 시종 가슴 뭉클하고 눈물나는 사연들 속에 녹여냈다. 남편의 두 번째 부인으로 들어온 여성을 탈출시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주인공 마리암의 삶은, 내전과 외침으로 점철된 고난의 국가 아프가니스탄에서도 특히 여성들이 감내해야 했던 고통을 증언한다. 탈레반 근본주의와 인간적 욕망이 충돌하며 빚어내는 이 나라만의 가면 같은 일상과 허위의 드라마는 안타까움과 흥미를 동시에 자아낸다. 원제 A Thousand Splendid Suns

생각의 탄생 

로버트 루트번스타인·미셸 루트번스타인 지음 | 박종성 옮김 
에코의서재 | 2만5000원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미시건주립대 생리학 교수는 다빈치, 아인슈타인, 피카소, 마르셀 뒤샹, 리처드 파인먼, 버지니아 울프, 나보코프, 제인 구달, 스트라빈스키, 마사 그레이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창조성을 뽐낸 천재들의 행적을 따라 상상력·창의력이 어떻게 나오는지를 추적했고, 그 결과물인 13가지 생각도구를 ‘생각의 탄생’에 정리했다. 천재들의 발상법을 관찰, 형상, 추상화, 패턴 인식·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놀이, 변형, 통합 등 13단계로 나눠 직관과 상상을 창조로 만들 방법을 소개했다. 그는 생각의 도구들을 자유자재로 사용한 점을 천재의 공통점으로 보고, 범인(凡人)들도 연습을 통해 잠재된 창조성을 끄집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원제 Sparks of Genius. The Thirteen Thinking Tools of the World’s Most Creative People

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1만1000원

‘남한산성’은 평소 한국소설에 무관심했던 중·장년 남성 독자들까지 끌어당기면서 33만 부 이상 팔렸다. 올해 대산문학상을 수상하는 문학적 평가도 누렸다. 병자호란을 소재로 삼은 역사소설이지만, 작가의 짙은 역사허무주의가 독자들을 순식간에 감염시켰다. ‘인간의 삶이 의미 있는 것은 지존과 영광만 있기 때문이 아니라 치욕과 굴종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란 관점에서 작가는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 내부의 생존투쟁을 비장미 넘치는 문체로 재현했다.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못 할 짓이 없고, 약한 자 또한 살아남기 위하여 못 할 짓이 없는’ 상황을 그린 역사소설이었다. 2007년 한국 독자들도 외환위기 이후의 무력감과 절박감이란, 보이지 않는 ‘남한산성’에 갇힌 것은 아닐까. 오늘의 독자들로부터 크게 공감을 얻은 소설이었다.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지음 |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만5000원

저자 리처드 도킨스 옥스퍼드대 교수는 ‘만들어진 신’에서 “신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바 없다. 우리는 단지 ‘무언가를 믿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 인간은 자체로 충분히 도덕적이며, 신이 없을 때 인간은 더욱 열정적이며 영적으로 진화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기적 유전자’(1976) ‘눈 먼 시계공’(1986) 등 전작에서 종교적 특권을 과학의 힘으로 벗겨내려 했던 이 진화생물학자 겸 지식의 전사(戰士)는 작심한 듯 펜 끝을 세우고 있다. 종교의 사회적 해악을 맹공하는데 망설임이 없다. ‘21세기의 지식으로 다윈의 이론을 해석하려는 다윈의 미천한 추종자’를 자처하는 그는, 신에 대한 부정은 곧 인간 본연의 가치인 진정한 사랑을 찾는 일이고, 미래 사회의 대안은 종교가 아닌 인간 그 자체에 있다고 주장한다. 원제 The God Delusion

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1만원

‘우리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지던 때에 나는 겨우 열두 살이었다’로 시작하는 황석영의 소설 ‘바리데기’는 탈북 소녀 ‘바리’가 중국을 거쳐 영국 런던까지 흘러가서 무슬림과 결혼하는 인생 역정을 담고 있다. ‘북한 난민을 세계화 체제의 그늘로 보고 있다’는 작가의 입장에서 한 탈북 소녀의 험난한 여정을 통해 세계화 시대의 이주노동자 문제를 다루고, 9·11 테러 이후 서양과 이슬람 문명의 충돌도 한국인의 시각에서 그려보았다. 주인공 바리는 시공간의 범위가 넓은 이 소설 속에서 마치 작가를 대변하듯 이렇게 중얼거린다. ‘나는 길고 연속된 꿈을 꾸고 나서 다시 토막토막 끊어진 꿈들을 꾸었는데 그것들을 연결하며 줄거리를 엮어나갔다.’ 25만부 이상 팔린 ‘바리데기’는 올해 한국소설의 중흥과 거대 서사의 귀환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 지음 | 부키 | 이순희 옮김 | 1만4000원

개방과 세계화만이 살 길이라는 외침에 대해,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는 “신(新)자유주의는 선진국·상위계층을 위해서만 복무한다”고 반박해왔다.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선진국의 위선과 독선을 비판했던 그가, 경제학 비(非)전공자를 위해 쓴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사악한 사마리아인(선진국)들의 과거로부터의 변신을 조명하면서 개구리(선진국)의 풍요는 올챙이(개발도상국)의 희생으로 가능했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시장주의와 자유무역은 탄탄한 경제력이 전제돼야 하며, 성공(선진국 진입)을 해서 자립(무역개방)한 것이지, 자립했기 때문에 성공한 게 아니라면서 ‘자기 속도에 맞는 개방’을 강조한다. 저자는 외국인 투자에 대한 ‘현명한 규제’와 ‘정부의 힘’을 역설하고, 민영화가 능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원제 Bad Samaritans

'2007 올해의 책' 선정에는 7대 유명 출판사의 편집팀과 편집대표(김영사 강옥순 이사, 문학과지성 김수영 주간, 문학동네 염현숙 편집국장, 민음사 장은수 대표, 웅진지식하우스 김형보 인문교양 주간, 창비 김정혜 문학출판팀장, 해냄 김수영 주간), 그리고 조선일보 문화부의 문학·출판·학술 담당 기자 7명이 참여했다. 올해 출간된 도서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던 책을 각각 5권씩 추천 받았고, 이를 다시 10권으로 압축·선정했다. '올해의 책'의 후보에 올랐던 양서들은 다음과 같다(무순).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은희경, 창비) 퀴즈쇼(김영하, 문학동네) 리진(신경숙, 문학동네) 오늘의 거짓말(정이현, 문학과지성사) 채식주의자(한강, 창비)럭키경성(전봉관, 살림) 위대한 백년, 18세기(정민, 태학사) 닥터스 씽킹(제롬 그루프먼, 해냄) 앗 뜨거워(빌 버포드, 해냄) 엔리케의 여정(소냐 나자리오, 다른)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강명관, 푸른역사) 조선의 프로페셔널(안대회, 휴머니스트)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이수광, 다산초당)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비밀(신시아 샤피로, 서돌)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정민, 김영사) 겐지 이야기(무라사키 시키부, 한길사) 욕망하는 식물(마이클 폴란, 황소자리) 노름마치(진옥섭, 생각의 나무) 제국, 그 사이의 한국 1895-1919(앙드레 슈미드, 휴머니스트) 산문기행(심경호, 이가서) 오류와 편견으로 가득한 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이옥순, 삼인) 개념어 사전(남경태, 들녘) 나무열전(강판권, 글항아리) 지식 e(EBS 지식채널, 북하우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장 지글러, 갈라파고스) 뿌리 깊은 나무의 생각(한창기, 휴머니스트) 백낙청 회화록(백낙청회화록간행위, 창비) 88만원 세대(우석훈·박권일, 레디앙) 미완의 시대(에릭 홉스봄, 민음사) 시크릿(론다 번, 살림Biz) 롱테일 경제학(크리스 앤더슨, 랜덤하우스) 스케치 쉽게하기(김충원, 진선출판사) 차가운 피부(알베르트 산체 피뇰, 들녘)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박현주, 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