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반월공단에서 자그마한 매점을 운영하는 최민호(52)씨는 공단 근로자들 사이에서 ‘마라톤 맨’으로 통한다. 매일 아침 10㎞ 거리를 뛰어서 출근하는 걸 모두 알기 때문이다.
그는 마라톤을 시작하기 전에는 100m를 걸어도 가쁜 숨을 몰아쉬던 지체 3급 장애인이다. 뇌성마비로 왼팔과 왼다리를 잘 쓰지 못한다.
“제가 뭐 인터뷰할만한 거리나 됩니까. 몸이 불편하다는 것 빼고는 특별한 게 없는데….”
삶은 달걀, 땅콩, 어묵, 라면 등이 잔뜩 쌓여있는 가게에서 만난 최씨는 걸을 때 마다 다리를 조금씩 절룩거렸다. 그런데도 가느다란 양 발목에 1.5㎏짜리 모래 주머니를 차고 있었다. 트레이닝복 상·하의에 운동화 차림. 그는 “운동복이 곧 평상복”이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최씨는 지난 2001년 가을 마라톤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하프코스 80회, 풀코스 9회를 완주했다. 날 때부터 몸이 불편해 늘 누워만 있던 그가 마라톤에 도전하게 된 건, 직장 동료의 권유 때문. 처음에는 내키지가 않았다. “100m도 못 걷는 사람에게 마라톤을 하라니 처음엔 거부감이 없진 않았어요. 겁이 나기도 했고, 불편한 다리가 두드러질까봐 부끄럽기도 했지요. 운동화까지 사 들고 와 등을 떠미는 그 분의 얼굴을 봐서 억지로 시작했습니다.”
다리를 저는 그에게 달리기는 곧 고통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뼈를 깎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생전 운동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으니 처음에는 100m를 뛰는 것 조차 힘들었다. 첫 주 100m, 둘째 주 200m. 이렇게 매주 100m씩 거리를 늘여가며 두달을 보냈다. “어느새 숨 차던 증세도 사라지고, 다리에 힘도 많이 붙었더군요. 마라톤이야말로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는 2002년 3월 안산 마라톤 클럽에 가입했다. 부인 박춘화(42)씨가 회원들이 모여 마라톤 연습을 하는 장소까지 매일 그를 자동차로 실어 날랐다. “회원들이 뛰어가면 저는 한참 뒤처져 걷다시피 해서 따라가곤 했어요. 제 걱정이 된 집사람이 같이 뛰기 시작했죠. 집사람도 곧 마라톤에 푹 빠졌어요. 지금까지 둘이 함께 완주한 대회가 50개도 넘습니다.”
2003년 가을 조선일보 춘천 마라톤대회의 기억을 그는 고이 간직하고 있다. 이 대회에서 그는 마라톤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처음으로 42.195㎞ 풀코스를 완주했다. 결승점에 들어서자 눈물이 절로 흘렀다. “처음에는 달리면서 나 자신에게 욕을 퍼부었습니다. ‘문디… 뭣 때문에 사서 이 고생을 하노!’ 그런데 결승점에 들어서자 형언할 수 없는 자신감이 온 몸을 휩싸더군요. ‘아, 나도 할 수 있구나!’”
이후 그는 매주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를 찾아 다니며 출전했다. 매일 오전 뛰어서 출근하는 것 이외에도 오후에도 한 시간 이상 달리기를 한다. 아무리 연습을 거듭해도 비장애인을 따라잡을 만큼 속도를 내지는 못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는 이 때까지 대회에서 단 한 번도 꼴찌를 해 본 적이 없다.
그는 “인생의 희노애락을 맛볼 수 있기 때문에 마라톤을 그만 둘 수 없다”고 했다. “삶을 포기한 사람이 있다면, 꼭 마라톤을 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인생이란 게 꼭 마라톤을 닮았거든요. 첫 10㎞는 무난하게 달립니다. 20㎞ 지점에선 숨이 가빠오고요. 30㎞째서부터 고통이 느껴지지요. 이후 1㎞마다 고통의 강도가 높아집니다. 인생의 고비고비와 유사하다고나 할까요. 그러다가 결승점에 들어서면 무아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그 순간이 좋아서 나는 달립니다. ‘해냈다’는 쾌감 보다는, 아무 생각도, 느낌도 없는 그 상태를 맛보기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