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낮 12시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정문과 본관 입구는 몹시 소란스러웠다. 대통합민주신당 소속 국회의원 60여명이 청사를 방문, ‘BBK사건’과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의 연루 의혹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라고 목소리를 높였기 때문이다.
정문 입구에서는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민주연대 21’ 회원 20여명이 “공작정치를 중단하라”며 이들의 진입을 막았다. 이들 사이를 비집고 신당 소속 정치인들이 한 사람만 드나들 정도로 좁혀진 정문을 통과, 양 옆으로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한 줄로 들어오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10여분의 실랑이 끝에 청사 안으로 들어온 이해찬 선대위원장은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는 이명박 후보는 스스로 검찰에 출두해 모든 것을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기남 클린선거대책위원장도 “현재 김경준씨와 이명박 후보 사이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 만큼 대질신문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검찰은 이 후보를 즉각 소환하고 수사결과를 발표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후 신당 의원 12명이 대표로 권재진 대검 차장검사를 만나 수사 촉구 입장을 전달했다.
이들 국회의원은 “검찰에 압력을 행사하기 위해 간 것이 아니라 공정한 수사를 요청하기 위해 갔다”고 강조했지만 한나라당은 “사실상 공작 수사를 하라고 검찰을 압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통합신당이 이 후보를 주가 조작 혐의 등으로 고발한 사건 당사자이기 때문에 이번 방문은 더욱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대선 패배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성을 잃고 검찰 수사까지 왜곡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사들은 “한나라당도 큰소리를 칠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한나라당 경선이 치러진 지난 8월 대검은 한나라당 의원들의 항의 방문으로 여러 차례 몸살을 앓은 바 있다. 검찰에서 도곡동 땅 수사결과를 발표하자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한나라당 의원 등 40여명은 대검 청사 앞에서 밤샘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그 직전에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경선 후보를 지지하는 의원 11명이 “수사 발표를 미루고 있다”며 대검을 항의 방문했다. 지난 7월에도 한나라당 국회의원 9명이 “검찰 수사가 한나라당에만 집중되고 있다”며 대검을 찾았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지금의 한나라당처럼 “검찰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며 비판한 바 있다.
한나라당은 또 최근 BBK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공작 수사’를 할 경우 ‘민란’ 수준의 국민적 저항이 있을 것”이라며 압박하기도 했다.
정치인들의 ‘방문’이 반복되자 검찰 안팎에서는 대검 청사가 국회의원들의 안방이냐는 자조적인 비난까지 나오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과거 검찰이 제대로 ‘중립’을 지키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지만, ‘내 입맛에 맞는 수사 결과’만을 바라는 정치인들의 과도한 정치 공세로 볼 수밖에 없다”며 눈살을 찌푸렸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도 “정치권의 압력성 검찰 방문은 수사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해칠 수 있다”면서 “여야 모두 말로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외치면서도 실제로 하는 행동은 반대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