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느긋하고 평온했다. 28일 저녁 강남 학동의 한 카페. 조바심의 그림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원맨 프로젝트 밴드 ‘토이(Toy)’의 유희열(36). 새 앨범과 관련된 단신(短信) 하나에도 인터넷을 뒤덮으며 들끓었던 팬들의 성화에 대한 그의 화답은 “제가 납득할 수 있는 앨범을 만드는 과정이 길었다”는 것뿐. 그의 지난 6년은 ‘굼뜬’ 일상 속에 ‘자연인’으로서 행복을 채워가는 시간이었다.

“연애, 결혼, 출산이 이어지면서 쭉 놀았죠. 하하. 가족과 함께 여행도 엄청 다녔어요. 유럽, 미국, 일본, 동남아, 닥치는 대로요. 그간 벌어놓은 돈을 다 써 버렸죠. 가족과 보내는 일상은 제 행복의 기준을 바꿔 버리더군요. 남과 비교해 제 성취나 안위를 확인하는 습관이 사라져 버렸어요.” 그는 지난 2005년 오랜 친구와 결혼한 뒤, 이제 갓 돌 지난 딸 리아를 키우며 살고 있다.

6년만에 새 앨범을 들고 팬들을 만나는‘토이’유희열(오른쪽)과 타이틀곡‘뜨거운 안녕’을 부른 홍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 출신 가수 이지형.

토이의 6집 앨범 ‘생큐(Thank You)’는 자유롭고 풍성하다. 음악적으로는 일렉트로닉적 요소와 기발한 리듬 파트가 도드라진다. 4집 ‘어 나이트 인 서울(A Night In Seoul)’과 5집 ‘페르마타(Fermata)’가 정점에서 손을 잡고 있는 느낌. 2번 트랙 ‘봉 보야쥬(Bon Voyage)부터 8번 트랙 ‘크리스마스 카드’까지 이어지는 앨범 전반부의 흡인력은 압도적. 타이틀곡 ‘뜨거운 안녕’은 80년대 신스(Synth) 팝 스타일의 창조적 변주다. 그는 “일렉트로닉 음악의 관습을 해체해 토이 스타일에 적용시켰다”고 했다. ‘투명인간’과 ‘나는 달’은 건조한 전자음에 어떻게 입김을 불어넣으면 따뜻하고 행복한 노래로 변신하는지를 간명하게 보여준다. 그의 재기가 가장 빛나는 지점. ‘해피엔드’, ‘프랑지파니’ 등 예쁘고 선명한 노래의 힘도 여전하다. 가장 이색적인 곡은 윤하가 부른 ‘오늘 서울 하늘은 하루 종일 맑음’. 유장하고 무거운 진행으로 유희열의 발라드 작법에 날아든 새로운 기운을 감지하게 된다.

그는 “이 앨범을 통해 제가 얻은 가장 큰 자산은 바로 사람”이라고 했다. 이지형, 윤상, 조원선, 루시드 폴, 김형중, 김연우, 성시경 등 A급 가수들이 객원 보컬로 참여해 그의 노래에 얼굴이 돼 주었기 때문.

“제가 영화감독이라면, 장동건, 정우성, 이정재, 심은하 같은 대형 배우들이 무보수로 제 작품에 출연해 주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아 진짜 객원 보컬들 없었으면 제가 지금까지 어떻게 먹고살았을까 하는 생각에 막막해져요.” 물론, 유희열 본인도 ‘해피엔드’ 등에서 노래를 한다. 그러나 그는 냉철하게 자신을 분석한다. “저는 가창력이 필요한 노래는 절대 못해요. 간혹 제가 어려운 노래에 덤비면, 스태프들이 뜯어말린다니까요. 그래서 객원 보컬들이 노래 부를 때 잔소리도 안 한답니다.”

토이의 남성 객원 보컬은 대체로 ‘착한 음성’의 주인공들. 그는 그 중 김형중에 대해 “소년의 설렘과 아픔을 갖고 있는 목소리”라며 추어올렸다. 타이틀곡을 부른 이지형에 대한 평가는 “외모는 꽃미남인데, 목소리는 순박하고 투명하다”는 것. 윤하에게는 “더 좋은 노래를 위해 자발적으로 6시간 이상 쉬지 않고 녹음하는 투지가 대단했다”는 찬사를 보냈다.

윤하는 최근 라디오에 출연해 “작업하기 전에는 토이를 몰랐고, 유희열씨가 백발노인인 줄 알았다”고 얘기해 토이 팬들의 거센 비난을 받아, 끝내 ‘눈물의 사과’를 했다. 유희열은 “윤하가 상처를 받지 않았을까 지금도 걱정된다”며 “팬에게는 고맙기도 하고 윤하에게는 미안한, 복합적 심경이었다. 공백이 너무 컸던 게 아닌가 자성하는 계기도 됐다”고 했다.

왜 토이의 팬들은 이렇게 ‘충성’스러울까? 그는 라디오 진행에 공을 돌렸다.

“5년여 동안 ‘음악도시’, ‘올 댓 뮤직’ 등 심야 라디오 프로를 진행하면서 팬들과 정서적인 연결고리를 갖게 됐어요.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사기’를 치기는 어렵잖아요. 당시 느꼈던 팬들의 진득한 성원 때문에 음악 외적인 것에 대한 욕심을 버렸어요.”

어쩌면, 그는 이 시대의 마지막 ‘라디오 스타’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