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의 다가구주택. 전셋방에 홀로 사는 이옥순(76) 할머니는 김장김치를 들고온 30·40대 남자들을 버선발로 뛰어나와 맞았다.

이 남자들은 고양시청 건설사업소 개발과 직원들. 이들은 행신동 805번지 700㎡(212평)에 13년째 천막 등을 짓고 무허가로 살고 있던 16가구 철거작업을 지난 15일 끝냈다. 이 할머니도 다가구주택으로 이사 오기 전에는 천막에서 살았다.

흔히 무허가 주택을 철거할 때는 단속반과 주민 사이의 극렬한 난투극이 벌어진다. 하지만 행신동 천막촌에선 철거 과정에서 오히려 ‘단속반’과 ‘거주민’ 사이에 훈훈한 정이 흘러 넘쳤다.

지난 26일 경기도 고양시청 개발과 직원들이 새집으로 이사 온 철거민들(가운데 두 여성)에게 김장김치를 전달하고 기뻐하고 있다.

고양시청 개발과 직원들은 지난 4월부터 거의 매일 천막촌을 찾았다. 과일을 사들고 가 주민들의 걱정을 들어줬다. IMF 외환위기 때 사업에 실패해 이혼까지 당하고 경비직으로 혼자 사는 사람, 안기부(현 국정원) 행정직으로 근무하다 아내가 사이비 종교에 빠지면서 홀로 남은 사람 등 주민 대부분이 딱한 처지였다. 두 가구만 빼고 모두 가족이 붕괴돼 있었다.

개발과 7급 주사보 이배균씨는 아예 주민들과 함께 천막에서 추운 밤을 지새웠다. 이 주사보는 “알고 보니 같은 고향 분이 있어 소주잔도 기울이며 형님·아우 관계를 맺었다”며 “새벽이면 천막에 살을 에는 추위가 닥쳤다”고 했다.

개발과 직원 15명은 550만원을 모았다. 윤성선 개발과장은 “추운 겨울은 다가오는데 천막 아래 촛불 켜고 사는 사람들을 마냥 모른 척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 돈으로 16가구 중 5가구에 이주자금을 대줬다. 직원들은 시·구청 차량을 동원해 이사를 도왔다. 자신이 기초생활수급권자인지도 모른 채 신장병으로 힘들게 투병하던 조철환(54)씨는 이들 덕분에 무료로 신장 투석을 정기적으로 받고 있다. 이날 개발과 직원들로부터 김장김치를 선물받은 이옥순 할머니는 “지난 13년간 언제 강제 철거를 당할지 몰라 늘 불안했었다”면서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 더 오래 살아 (개발과 직원들에게) 빚을 갚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