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청률이 저공비행하는데도, 출연하는 조연배우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27일 종방한 KBS 2TV 드라마 ‘얼렁뚱땅 흥신소’에 조직폭력배 두목 역할로 출연한 배우 박희순(37)이 딱 그렇다.

지난 26일 이 드라마 방영분의 시청률은 3.1%(TNS 미디어코리아 기준). 이른바 ‘애국가 시청률’과 비슷하지만, 각종 포털 사이트 게시판과 블로그엔 박희순을 두고 “새로운 미중년 남성을 발견했다”라고 표현하는 글들이 넘쳐난다. 최근엔 그의 미니홈피 방문자가 1000명이 넘는 희한한 사건까지 벌어졌다. 정작 박희순은 얼떨떨한 모양이다. “그러게요, 정말 이상하더라고요”라며 머쓱하게 웃을 뿐이다.

박희순은 극단 ‘목화’ 출신. 연출자 오태석 밑에서 그는 몇 년 동안 마룻바닥 걸레질을 하고 무대를 수리하고 톱질하는 심부름을 주로 하며 연기를 배웠다. 어쩌다 ‘1인 8역’ 같은 단역을 맡는 날엔 가슴이 뛰었다. 대사 한 줄을 읽고 또 읽었다. “오태석 선생님에게 항상 ‘대사 한 줄을 뱉더라도, 고민하고 생각하라’는 잔소리를 들었죠.”

혹독한 고생과 단련 끝에,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그리스’ 같은 작품을 거치며 연극계의 ‘젊은 피’로 거듭나면서, 그는 더 넓은 물에 가고 싶었다. 그렇게 영화 ‘2001 이매진’과 ‘보스상륙작전’에 처음 출연했다. 일단 처음에 깡패를 연기했더니, 그 후로도 계속 깡패 역할만 들어왔다.

드라마‘얼렁뚱땅 흥신소’와 영화‘세븐데이즈’에 출연해 개성 있는 조역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배우 박희순. 그는“나를 찍는 카메라가 아직도 어색하다”며 머쓱해 했다.

“영화 ‘가족’에서도 조폭을 연기해 달래서, 작정하고 ‘진짜 나쁜 놈을 보여주겠다’고 마음먹고 연기했어요. 그러면 다시는 깡패 연기는 안 시킬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웬걸…, 계속 시키던데요.(웃음)”

찍었던 영화가 개봉을 못하거나 ‘엎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 ‘바보’, ‘사과’ 같은 영화가 아직도 빛을 보지 못한 대표적인 예다. 최근 개봉한 ‘세븐 데이즈’도 처음엔 ‘목요일의 아이’라는 제목으로 촬영을 시작했다가, 촬영이 중단되는 위기를 겪었다. 다시 ‘세븐 데이즈’ 촬영을 재개하기까지 화병이 심해져서 병원을 다녔을 정도다. 뒤늦게 영화와 드라마 촬영에 연달아 뛰어들면서 박희순은 비로소 “치료받고, 구원받은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살풀이하는 기분으로 촬영했어요. ‘세븐 데이즈’를 찍으면서는 ‘내게 이런 표정이 있구나, 나한테도 이런 에너지가 있구나’라는 걸 처음 느꼈고, ‘얼렁뚱땅 흥신소’를 찍으면서는 우울한 표정으로도 사람을 웃길 수 있는 끼를 스스로 발견했으니까요.”

반응은 뜻밖이다. 드라마 속 ‘나쁜 남자’ 백민철이 희경(예지원)을 향해 “의도적으로 접근했지만, 만나다 보니 당신의 매력을 발견하게 됐다…, 라고 말하면 마음이 편해집니까?”라고 비웃던 장면은 네티즌들이 열광하며 블로그에 퍼 나르는 이른바 ‘완소(완전 소중) 장면’. 악역을 연기하면서도 어깨에 힘 주지 않고, 얼굴 근육을 크게 움직이지 않고도 감정의 높낮이를 모두 보여주는 조용한 표정연기가 압권이다.

드라마의 소리 없는 인기는 박희순의 영화 인생에도 ‘시너지 효과’를 미쳤다. “‘얼렁뚱땅 흥신소’를 보고 영화 ‘세븐 데이즈’를 보러 오시는 분도 많으시고, 역으로 영화 ‘세븐 데이즈’를 보시고 ‘얼렁뚱땅 흥신소’를 찾아보시는 분들도 계신대요. 이렇게 출연작품의 운이 좋았던 적도 찾기 쉽지 않을 텐데.” (웃음)

나이도 적지 않고, 스타가 되기엔 외모도 몇 %쯤은 부족한데, 뒤늦게 드라마 출연을 했으면서도 조바심을 내지 않는 비결이 궁금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점프해서 성공한 적 없는 인생인데, 갑자기 기회가 왔다고 가진 구슬 전부를 다 쓰면 안 되잖아요. 천천히 가진 구슬을 하나씩 보여주려고요. 마흔, 쉰 살 넘어서도 새 구슬을 쓸 수 있게.”

그렇다면 그가 준비한 다음 구슬은 뭘까. “저 알고 보면 은근히 웃기는 놈이거든요. 예지원씨 같은 4차원 세계의 사람이랑 같이 괴상한 코미디 한번 제대로 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