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싣는 순서
①세계사회학회 회장 미셸 비비오르카 교수
②프랑스 사회사상가 알랭 투렌
④영국 정치철학자 데이비드 헬드 LSE(런던정경대학) 교수
⑤프랑스 정치철학자 마르셀 고셰 사상 전문지 '데바' 편집장
지금은 프랑스 파리를 근거지로 해서 유네스코 철학 석좌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독일의 대표적인 진보철학자 한스 잔트퀼러 교수를 만난 곳은 그가 평생 재직했던 독일 브레멘대 연구실이었다. 한때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됐던 그는 지금은 지식민주주의, 다원주의, 문명 간 소통, 인권 및 평화 등을 탐구하는 유연한 진보주의를 견지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에게 ‘유물론적 해석학의 개척자’라는 명성을 가져다 주었던 70년대의 ‘실천과 역사의식’이란 책을 읽어본 적이 있다고 말하자 잔트퀼러 교수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그 책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손사래를 쳤다. 연구실 양벽에는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그가 여행했던 나라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오른쪽에 남대문 야경(夜景)사진이 시야에 들어왔다.
◆ "통일 이후 구동독 권위주의 되살아나"
―젊어서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신봉했고 이후에도 중도좌파적인 진보성향을 보여온 입장에서 지난 20년간 진행된 독일의 통일과정을 남다른 시각에서 지켜봤을 텐데.
"1989년 당시 나는 현재와 같은 방식의 통일에 반대했다. 이유는 동독의 권위주의 정권하에 살던 1700만 명이 전혀 민주주의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어렵사리 민주주의가 정착된 구서독에 부정적 영향을 주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현재 독일에서는 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구동독의 권위주의 풍조들이 구서독에 역수입되어 다원적 민주주의가 퇴조하고 있다. 외국인을 거의 볼 일이 없는 구동독 지역에서 네오나치즘이 힘을 발휘하는 것도 다양성 인정의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서독과 동독이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관계처럼 상호 독립된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았다. 거기에는 민주주의 문제와 더불어 경제적 이유도 있었다. 동독은 동구권 시장을 기반으로 했던 나라이다. 그러나 통일이 되면서 동구권 시장을 상실했고 그것은 동독 산업의 급속한 붕괴로 이어졌다. 지금도 구동독 지역의 실업률은 20%를 넘고 있고 특히 청년 실업은 40%에 이른다. 전반적인 독일 민주주의의 구조가 무너져 내리고 있어 걱정이다. 한국도 이런 점을 참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독일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말은 과장으로 들린다.
“물론 구동독 주민들이 과거에 비해 훨씬 많은 민주적 혜택을 누리는 것은 긍정적인 면이다. 그러나 구동독에서 좌절한 청년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극우 인종주의가 구서독지역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권위주의적 문화가 되살아나는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게다가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 겹치면서 공공 영역에서의 다원성이 사라지고 개인의 인권은 너무나 쉽게 무시당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의 후퇴, 자유의 정체 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은 실망스럽지만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유네스코 프로젝트 때문에 아랍국가들을 자주 방문한다. 튀니지의 경우 매년 방문하고 있다. 이 나라는 잘 알겠지만 극단적인 권위주의 국가다. 그러나 그런 나라에도 시민사회가 존재하고 인권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얼마 전에도 이곳에서 프랑스 튀니지 등의 학자들과 함께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아 ‘인권과 상호존중’을 주제로 토론을 했다.”
◆ “이슬람 사회에도 시민운동 존재”
―이슬람권의 민주주의에 대해 낙관하는가?
“그건 아니다. 이슬람권 나라들은 대부분 심각한 빈부격차를 겪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젊은이들은 세계화에 적대적이다. 이슬람권을 싸잡아 비판하는 것도 문제다. 근본주의란 어느 나라에나 있다. 미국에도 있고 독일에도 있다. 그런데 이슬람권을 이야기할 때면 늘 소수의 근본주의를 전체 이슬람과 동일시해서 비방한다. 알제리를 보자. 이 나라는 법체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없고 국민들의 건강을 관리할 능력도 없다. 먹을 것도 없다. 이런 문제들을 보완해주는 게 이슬람이다. 교육도 국가보다는 이슬람사원이 맡고 있다.
이슬람권에도 민주화 세력이 분명 존재한다. 그런데 이라크전쟁 이후 이들은 더 이상 미국에 기대를 갖지 않게 됐다. 자신들의 풍부한 문화를 바탕으로 한 정체성을 지키면서 민주화를 이룩하려는 것이다. 다만 멀고 험한 길이 될 것으로 본다.”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 위기가 나타나는 이유는 뭐라고 보는가?
“미국이 아닌, 부시 정권의 정책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미국은 내부적으로는 민주주의가 축소되고 있고 대외적으로는 세계 각지의 근본주의를 강화시켰다. 게다가 각 나라들이 다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고 볼 수 없다. 1999년까지만 해도 민주화 진행이 착착 이뤄지는 것 같던 러시아가 다시 독재국가화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부시도 문제지만 결국은 테러리즘이 민주주의의 적(敵) 아닌가?
“테러리즘이 민주주의를 축소시키는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유의 원칙보다는 안전의 원칙이 더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길이다. 안전이란 민주적인 법치국가에서만 달성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독일까지도 외부위협을 이유로 법치체계를 약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아마도 법치를 완화해서라도 내적인 안정을 얻으려는 것 같은데 장기적으로 보면 결코 내적인 안정도 얻지 못한다. 현재 독일에서는 내무장관이 테러방지를 이유로 개인 컴퓨터에 마음대로 들어와서 볼 수 있는 법을 추진 중이다. 독일 사람들은 자유와 민주주의 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치열하게 저항하고 있다. 나도 힘을 보탤 생각이다.”
◆ “독점은 민주주의의 적”
―한국에서는 지금 민주화 운동에 앞장 섰던 세력들이 정치의 전면에 나섰다가 비판을 받고 있다. 그들의 무능, ‘시민운동의 정치화’에 따른 도덕적 문제 등으로 인해 민주화 세력 전반이 불신의 대상이 돼버렸다.
“1998년부터 한국을 자주 방문하며 민주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사실 민주화된 이후 민주주의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퇴조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것만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한국에는 독일에 없는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경제적 독점(재벌)의 문제다. 독점은 의견의 다양성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민주세력과는 대립할 수밖에 없다. 한국이 이제 고민해야 할 것은 정치를 넘어선 민주주의, 즉 사회 경제 문화로서의 민주주의다.”
―전 세계적으로 ‘지식인의 죽음’이 민주주의 퇴조에 기여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독일의 경우는 어떤가?
“한국의 경우도 그런가? 독일과 프랑스를 비교해보면 사정은 많이 다르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지식인 중심의 사회다. 다만 요즘 프랑스는 좌파 지식인이 퇴조하고 우파 지식인들이 매체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반면 독일은 지식인의 비중이 프랑스처럼 크지 않다. 굳이 찾자면 위르겐 하버마스나 귄터 그라스 정도다. 그 이유는 독일에서는 학문제도가 고도로 전문화 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해당 분야의 쟁점과 관련해 정부에 조언하는 것으로 ‘실천적 과제’가 끝나기 때문에 미디어에 노출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요즘 학자들은 하버마스처럼 사회 전체에 대한 포괄적인 진단을 시도하지 않는다.”
◆한스 잔트퀼러(Hans Sandkuhler)는 누구?
1940년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태어난 잔트퀼러 교수는 독일의 대표적인 보수주의 철학자 요아힘 리터에게서 철학을 배웠다. 그러나 '68혁명'을 겪으면서 마르크스주의에 빠져든 그는 70년대에 '실천과 역사의식'이라는 저서를 내놓아 젊은 나이에 독일 좌파 철학의 지도적 인물의 하나로 떠올랐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동독의 폐쇄성과 현실 사회주의의 모습에 실망한 그는 다원주의의 중요성에 눈을 뜨면서 철학적 전환을 경험한다. 이후 그는 민주주의 인권 다원성 등을 강조하는 실천적 철학자의 길을 걸었다. 특히 잔트퀼러 교수는 지식민주주의를 강조한다. 지식기반사회에서 앎의 결핍은 주체적 자기결정 능력을 떨어트리고 빈부의 격차를 더욱 심화시킨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의 지식민주주의론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지식독점’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결과 얻어낸 자신의 고유한 개념이지만 자본주의 사회라고 해서 적용할 수 없는 게 아니다. 정부나 기업에 의한 지식독점, 정보독점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인의 죽음
인텔리겐챠, 즉 '혁명의 최전선'을 지키던 지식인은 러시아혁명과 함께 사라졌다고 보는 평자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를 중심으로 다수의 지식인들이 막강한 발언권을 행사했던 시기가 있었다. 20세기 후반이다. 그리고 이 때는 '지식인=좌파'의 등식이 성립할 만큼 지식인사회의 분위기는 좌파적이었다.
레이몽 아롱 같은 우파 지식인이 '지식인의 아편'이란 저서를 통해 마르크스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외로운 외침일 뿐이었다.
전통적으로 영미권에서는 지식인의 발언권이 그리 크지 않았고 프랑스·독일에서는 철학자·작가 등이 중심이 된 지식인 사회의 비중이 컸다. 이들은 민주주의의 수호자, 사회적 약자의 대변자로 대중들에게 각인될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펼쳤다.
한국 사회는 영미권보다는 프랑스의 전통에 가까웠다. 민주화 과정에서 수많은 지식인들이 온몸을 던져 권위주의 정권에 대항했고 따라서 일반인들의 큰 신망을 얻었다. 유럽이나 한국 모두 '지식인의 죽음'을 이야기하게 된 것은 사회주의의 몰락 때문이었다. 이후 급속한 세계화의 물결이 덮쳤고 지식인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됐다. 과도한 좌편향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고 민주화 시대에 더 이상 지식인의 역할이 크게 필요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이번 기획에서 만난 세계적 지성들은 "지식인의 몰락은 민주주의의 건강에 바람직하지 않다. 민주주의가 흔들릴 때 위기의 조짐을 경고하는 일 역시 지식인의 몫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