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그만두니 회의 안 해도 되고 학사업무에 시달리지 않고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니 놀라운 집중력이 생겨요. 오히려 대학에 있을 때 공부하기가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최근 ‘꿈과 반역의 실학자 유수원’(지식산업사)을 펴낸 국사학자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한림대 특임교수·69)의 표정은 너무나도 밝았다. 실제로 한영우 교수가 2003년 정년퇴직 후 5년 동안 펴낸 책만 10종(개정판 1종 포함)이다. 올 한 해에도 이미 ‘실학의 선구자 이수광’(경세원), ‘반차도로 따라가는 정조의 화성행차’(효형출판), ‘동궐도’(효형출판) 등 3권을 냈으니 이번이 네 번째다. 그의 놀라운 생산성은 학계와 출판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기고 있다. 정년 이후 탄력이 붙기 시작한 왕성한 저술활동이 학문적 조로(早老)현상이라는 우리 학계의 고질적 병폐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학계 일각에서 제기하는 인문학 위기론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한영우 교수는 자신이 한국사 연구에 몸을 던지게 된 동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문제의식이 없으니 위기에 빠진 것 아니냐는 우회적 비판으로 들렸다.

“6·25 직후 청소년기를 보낸 우리는 귀가 따갑도록 한국인·한국사에 대한 자조적 이야기를 듣고 살아야 했습니다. ‘한국 사람은 안돼!’ ‘우리 역사를 보면 우리 민족에게는 희망이 없어!’ 사대주의, 조공(朝貢), 당쟁 등으로 이어지다가 망한 게 우리 역사라고 배웠지요. 4·19가 아니었다면 나는 한국사를 공부하지 않았을지 몰라요.”

4·19는 청년 한영우에게 민족적 각성의 계기를 제공했다. 신채호· 박은식 등의 애국주의적 한국사를 읽으며 우리 민족과 역사에 대한 허무주의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은 망할 수밖에 없는 나라’라는 선입견은 쉽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이념으로 건국된 나라이기에 조선은 외세에 망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알기 위해 조선 초로 거슬러 올라가 정도전을 연구했다. “깜짝 놀랐습니다.” 조선은 후기보다는 초기가 훨씬 민본적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1973년 그의 첫 번째 저서 ‘정도전 사상 연구’는 그래서 나왔다.

한 교수는 최근 세종 때의 경세가 양성지를 다룬 ‘수성기의 제갈량 양성지’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고 책상에는 ‘양반 연구’ 원고가 놓여 있었다. “이번에 연구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충청도 양반, 전라도 양반, 경상도 양반이 생활양식 면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는 사실입니다. 충청도 양반은 옷(衣)에, 전라도 양반은 음식(食)에, 경상도 양반은 집(住)에 큰 비중을 뒀습니다. 이제 지방마다 갖고 있는 풍토색을 인정해도 될 만큼 한국 사회가 성숙했다고 봅니다.”

김영삼 정권 이후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과거사를 단죄하려는 시도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세종대왕이 ‘고려사’를 쓴 것도 크게 보면 고려에 대한 역사평가라 할 수 있어요.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잡은 사람은 지난 시대를 자신의 잣대로 재평가하고 싶어합니다. 다만 그 시각이 일반 국민들의 생각에서 너무 동떨어지면 곤란합니다. 특히 5년짜리 정권이 수십 년 역사를 단죄하겠다는 발상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