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아줌마’들은 바쁘다. 오전엔 헬스·자원봉사·각종 모임 등으로 분주하고 오후엔 아이들 학원 챙겨 보내느라 정신 없다. 오전 10시 이후에 집에 있는 일이 드물다는 이 열성적인 분당 주부들 가운데 구태의연한 아파트 부녀회를 확 바꿔보겠다며 의욕을 보이는 여성들이 있다.

“이 위에 리본을 달아볼까?”

“꽃이 낫지 않아요? 나, 꽃 만들어놓은 것 있는데….”

23일 382세대가 모여 사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3동 정든마을 한진 7차 아파트. 이 아파트 오세현(42) 부녀회장의 집에 주부들이 모여들었다. 칼, 가위, 풀, 알록달록한 색지 등을 테이블 가득 벌여놓은 이들은 포스터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28일 부녀회가 주최하는 ‘작가와의 대화’ 행사를 알리기 위한 포스터예요. 분당에 사는 동화작가 한 분을 초청해 동네 엄마들한테 동화를 통한 자녀교육법에 대해 강의해달라고 했거든요.” 색지를 들고 분주히 풀칠을 하던 오세현 회장의 말이다.

지난 10월 이 아파트 부녀회장으로 선임된 오 회장은 삭막하기 그지 없는 분당 아파트 문화를 개선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분당 아파트라는 게 그래요. 젊은 사람들은 참 많은데 이웃간 교류가 없고 인사도 잘 나누지 않죠. 어릴적 시골마을에서 처럼 서로 마실도 다니고, 모여서 이야기도 나누면 좋겠다 싶어 이런 자리를 궁리하게 됐죠.”

매월 주민들을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열고 있는 분당 한진7차 아파트 부녀회원들이 이달 행사인‘작가와의 대화’를 알리기 위해 포스터를 만들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박미정, 황연숙, 오세현, 정홍님, 강해미, 김은주씨.

오 회장이 낸 아이디어는 한 달에 한 번씩 이벤트를 열어 주민들이 교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 오회장의 제안에 부녀회 정홍님(37) 총무는 선뜻 동의했다. “자기계발도 좋지만 서로 웃고 더불어 살 수 있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이 동네 아이들이 ‘동네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것도 안타깝게 보였어요.”

의기투합한 이들은 지난달 당장 ‘어린이 벼룩시장’을 열었다. 집에서 안 쓰는 물건들을 가지고 나와 장터에 내 놓고 아이들로 하여금 직접 팔도록 했다. 실제 사업자에게 하듯 어린이 이름으로 가게등록증을 발부하고 시장안에서만 통용되는 화폐 ‘벼룩머니’도 만들었다. 장터가 열린 동안 아파트 한 구석에서는 여성인력개발센터를 비롯한 각종 단체들이 비즈공예, 천연염색, 천연비누 만들기 등 각종 체험행사를 펼쳤다. 결과는 대성황이었다. 소문을 듣고 옆 아파트 단지에서까지 사람들이 몰려올 정도였다. 부녀회 박미정(34)씨는 “물건을 내놓기 전에 초등학교 2학년인 딸아이에게 직접 가격을 정하도록 했다”며 “이를 계기로 아이가 경제에 눈을 뜬 것 같아 흐뭇하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 부녀회가 가장 역점을 두는 건 자녀 교육과 주민간 친목 도모. 정홍님 총무는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볏짚을 쌓아놓은 걸 보고 ‘나무토막’이라고 하는데 충격을 받았다”며 “도시생활에 찌든 우리아이들을 산으로 들로 함께 데리고 나갈 수 있는 다정한 공동체를 구상중”이라고 했다.

부녀회는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앞둔 다음달엔 ‘선물포장’ 이벤트를 펼칠 계획이다. 날이 풀리면 아이들을 위한 답사나 캠프도 열고, 동네 어르신들을 위한 이벤트도 적극 마련할 예정이다. 행사 비용은 아파트 게시판 광고 수당으로 충당한다. 초등학교 2학년 딸과 네살 아들을 둔 부녀회원 강해미(36)씨는 “매월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생각만 해도 설레게 된다”며 “아파트가 정다운 마을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