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도인들은 ‘풍류(風流)로써 세상을 건지리라!’고 하였다. 고대의 풍류 가운데 여러 가지 풍류가 있지만, 필자가 해보지 못한 풍류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유상곡수’(流觴曲水)라는 풍류이다. 흐르는 물에다 술잔을 띄워 보내면 그 술잔을 받은 사람마다 시를 지어 화답하는 놀이가 유상곡수이다. 경주의 포석정이 그러한 유상곡수의 풍류가 행해졌던 유적이다. 통일신라시대 정읍 태인에 태수로 부임했던 고운 최치원도 칠보 시산리에 유상대(流觴臺)를 만들어놓고 유상곡수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대개 이 유상곡수의 풍류는 음력 3월 3일에 많이 행해졌다. 마음에 맞는 친지들이 둘러앉아 물에다 술잔을 띄우면 술잔이 둥둥 떠서 자기 앞에 온다. 물이 곡수(曲水)로 굽어서 돌기 때문에 앉아 있는 사람의 앞에 머물게 되어 있는 것이다. 물에 둥둥 떠오는 술잔을 받는다는 것은 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흐르는 물가에서 이 놀이를 하는 이유는 상서롭지 못한 액운을 씻어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유상곡수’ 하면 생각나는 인물이 진(晋)나라의 왕희지(王羲之)이다. 그는 절강성 소흥현 회계산 북쪽에 있는 난정(蘭亭)에서 이루어졌던 유상곡수의 풍류모임에 관한 내용을 ‘난정기’(蘭亭記)라는 기록으로 남겼다. ‘난정기’는 내용 자체도 명문이지만, 그 서체가 또한 절세의 명필인 왕희지의 대표작으로 유명하다. 한자문화권에서 서예를 하는 사람치고 이 ‘난정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유명한 필첩(筆帖)이 ‘난정기’인 것이다. 왕희지 글씨의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그 모든 요체가 여기에 들어 있다.
필자는 평소 왕희지를 흠모한 나머지 10년 전쯤에 왕희지의 유적지를 찾아갔던 적이 있다. 왕희지가 살았던 거처는 중국의 역대 은자(隱者)들이 가장 많이 선호하였던 여산(廬山) 자락에 있었다. 계곡물이 저 위쪽에서부터 굽이굽이 휘감아 돌아오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절경에서 왕희지는 살았다. 그 옆의 바위 절벽에는 옥룡폭포(玉龍瀑布)라고 하는 폭포가 뿌연 물안개를 품으며 물길을 내리꽂고 있었다. 이번에 크리스티 경매에서 왕희지 글씨 모사본이 무려 45억원에 낙찰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외신을 보면서, 왕희지의 유상곡수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