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왜 날 낳으셨나요? 철없던 시절, 한번 내뱉은 말은 재미가 붙어 버릇이 됐었습니다. 어느 날, 참다못한 어머니가 한 말씀 하셨지요? 난, 너 같은 애 낳으려 한 적 없어. 네가 날 찾아온 거지!

그 한 말씀으로 못된 내 말버릇은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리차드 바크의 ‘환상’은 우리 어머니의 그 사고방식을 풀어놓은 것 같네요. 주인공 도널드가 말합니다. 우리가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은 그렇게 살기를 택했기 때문이라고.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등불로 살고 어떤 이는 그림자로 삽니다. 어떤 이는 삶의 진창에서 쓰러지고, 어떤 이는 그 진창에서 연꽃으로 핍니다. 천양지차의 삶, 그 삶은 실제라기보다 ‘나’의 꿈이라나요? 내 안에 품었던 것들이 펼쳐지고 나타나는 거랍니다. 다만 나도 모르는 사이 은밀히 품게 되었던 것이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내 마음 나도 몰라”가 되는 겁니다.

“이 세상? 그 안에 있는 것들? 그건 모두 환상이야. 불행한 사람들은 스스로 불행을 택했기 때문에 불행한 거야.” 저렇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도널드는 누구일까요? 실제 인물인지, 리차드의 환상 속 스승인지 알 길도 없고 알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그들의 대화가 재미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불행을 택하는 사람들이 있나요? 저 생각은 불행한 사람들에 대한 모독이 될 수도 있지요? 도널드의 저 말은 불행에 빠질 이유는 실제 없다는 겁니다. ‘환상’에서 그는 총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억울할 것도, 불행할 것도 없다고, 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자신의 성향이 이런 비극을 부른 거라고 사태를 긍정합니다. 생각해보면 어떤 이는 폭탄이 떨어지는 곳에서도 사랑을 하고, 어떤 이는 우아한 테이블 앞에서도 고독으로 유폐됩니다. 어떤 이는 늘 불안해서 좋은 일도 누리지 못하고 어떤 이는 슬픔도 충만하게 누릴 줄 압니다. 그러고 보면 불행이란 생을 긍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래 실제는 그저 무심한 거라지요? “실제는 성스럽고 무심하네. 어머니는 자기 아이가 놀이에서 어떤 역할을 하든 상관하지 않지. 하루는 나쁜 역할을 하고, 다음 날은 좋은 역을 하기도 하니까.” 성스러울 정도로 무심한 그 생을 그대로 느껴보면 세상에 나쁜 존재는 없습니다. 어떤 친구가 당신을 해한다고 믿는다면 당신이 그가 나쁜 존재라 믿기 때문입니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내 세포 마디마디에 새겨지는 것은 세상 그 자체라기보다 세상에 대한 느낌이고 생각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 생각과 느낌들을 다시 세상으로 돌려주는 거지요. “이 세계는 자네 상상이네. 잊었나? 생각이 있는 곳에 경험이 있다는 거 말이야.”

살다 보면 어떤 사람 때문에 삶이 싫어질 때가 있지요? 내 인생에서 지우고픈 존재가 내게 무엇이었는지 충분히 느끼고 받아들일 때까지 삶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그런 유형의 존재가 자꾸자꾸 내 앞에 나타나는 이유입니다.